제542회 [요한계시록 제45회] 경외해야 할 하나님 - 이루리라교회 홍성필 목사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 1절~5절
“1.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2.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설교 동영상


설교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x4JgmvQBlb8&list=PLi8oNAZU9c8i5yu5YUqsulNOwrFZFc9Ud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hongja/542.mp3

설교 본문 : http://www.irurira.kr/irurirapreaching/preaching_pastor_hong_sung_pil_05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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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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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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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45번째 시간으로서 “경외해야 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회에서는 이마에 인 치심을 받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인 144,000명, 그리고 어린 양의 피에 씻어 희게 된 옷을 입은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한 찬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자, 오늘은 드디어 하나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의 일곱번째 인을 떼는 시간입니다.

우선 본문부터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서 일곱째 인을 떼시자 하나님 앞에서 일곱 명의 천사들이 나팔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른바 일곱가지의 심판은 먼저 일곱 인에서 시작해서 다음으로 일곱 나팔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곱 대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천사들의 나팔이 등장했다는 것은 크게 나누어서 심판의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나팔을 불기 전에 어떤 천사가 금향로에 많은 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성도들의 기도라고 하지요.

이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자 그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아 부었더니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났다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 제사 종류도 많아요. 크게 보면 속죄제나 속건제, 화목제, 번제, 소제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입니다.

이는 대표적으로 양이나 염소 등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비싼 것만 받으신다는 것은 아니에요.

율법에 의하면 양이나 염소, 송아지 등을 바치라고 되어 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라면 빚을 내서라도 비싼 제물을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값이 싼 비둘기를 바치라고 되어 있고, 그 비둘기조차도 마련할 수 없다면 밀가루로 대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앞에 예물을 무조건 많이 내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형편에 맞게 드리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알기 쉬운 것이 십일조라고 할 수 있잖아요. 많이 벌면 많이 드리고 적으면 형편에 맞는 만큼 섬기면 되는 것이지요.

이는 좀 여담입니다만, 한 가지 퀴즈를 낼까요? 자,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잖아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대로 오셨기 때문에 아버지 요셉의 피는 섞여 있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세상적으로 본다면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서 기록됩니다.

분명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 집안은 부유했을까요? 아니면 가난했을까요.

성경 기록을 보시면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레위기 12장에서는 여자가 아이를 낳고 7일이 지난 후에 제물을 바치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세요.

여기에서는 양을 바치라고 되어 있는데, 8절 말씀에 의하면 양을 바치기에 힘이 부족할 경우, 말하자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에는 비둘기를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그러면 과연 마리아는 무엇을 바쳤을까요.

누가복음 2장 24절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예, 비둘기를 바쳤어요.

요셉은 분명 다윗 왕의 자손이었다고 하니 당연히 부유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기록에 의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이, 적어도 제물로서 양을 바칠 정도로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고 해야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도 너무 무조건 축복을 받고 싶다고 해서 무리해가며 많은 예물을 바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기 형편에 맞게,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 그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지요.

자,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바친 제물을 어떻게 받으셨습니까.

성경에 보시면 음식을 직접 잡수신 적도 있어요.

창세기 18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 알아본 아브라함은 급히 하인을 시켜 송아지 요리를 만들게 하고는 우유와 엉긴 젖, 말하자면 버터와 함께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함께 온 천사들과 함께 친히 잡수셨다고 하지요. 하지만 이는 율법적인 제물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다음 구절이 있어요.

창세기 8장 20절~21절 전반부
“20.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레위기 1장 9절 후반부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제물을 그 향기로 받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세요.

이는 꼭 불로 태우기만 하는 구약만이 아니라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서 4장 18절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구약에서도 제물을 드리게 되면 그 종류에 따라서 그 제물을 제사장들이 차지하게 되었고, 신약에서도 교회에 예물을 드리면 이는 교회 재정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예물들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 귀한 향기로운 제물로 바쳐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향연 즉 향기로운 연기와 기도라고 되어 있어요. 지금까지 해석으로 본다면 여기서의 향연은 성도들이 바친 예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와 함께 성도들이 드린 기도도 하나님 앞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향기로운 연기로 흠향하시고 성도들의 기도들이 열납되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그리고 또한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연기가 났다는 것은 여기서 불을 사용했다는 뜻이 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데 사용된 불은 이제 땅 위로 쏟아져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흥미롭지 않습니까. 제단의 불이 언제는 성도들의 기도와 그 바친 예물들을 하나님 앞에 올리는 데에 쓰이기도 하는데, 반면에 한편으로는 무서운 심판으로 사용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 땅을 심판하실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기야 그렇지요.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고 심판을 하지 마셔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이와 같이 끔찍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일까요.

자, 여러분, 이 시점에서 저는 여러분께 한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치료의 하나님, 승리의 하나님, 평안의 하나님……맞지요? 예,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사실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이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쩌면 제가 지금 드린 말씀은 하나님에 대해서 반쪽 뿐일 수도 있어요.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다음 성경구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언 9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만약에 오늘날의 교인들이 잠언을 남긴다고 한다면 무엇을 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할까요.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여호와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성경 말씀에 보시면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예, 그렇죠. 다른 것이 아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경외하다’의 정확한 뜻이 무엇입니까.

어려운 말 할 것 없습니다. 다른 번역본에서 같은 구절을 찾아보면 쉽잖아요.

생명의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에는 잠언 9장 10절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현대인의 성경판 잠언 9장 10절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이요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을 좀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 친근하게 생각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에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우리 한 번 쉬운 예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서는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아니면 과거에 하셨던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 여러분의 직장 상사와 하나님, 어느 쪽이 더 두렵습니까. 두렵다고 하면 좀 어폐도 있을 수 있을 테니 좀 다른 말로 바꿔볼까요.

여러분의 직장 상사와 하나님, 어느 쪽이 더 조심스럽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당연히 하나님이 더 조심스럽다”라고 대답하실 분이 과연 얼마나 계실까요.

단적인 예로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해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지 않아요.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해 주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아니, 하나님, 도대체 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까. 내가 얼마나 기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그러는데 내 기도를 안 들어줍니까. 이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

그런 마음을 가져 보신 분도 많이 계시지 않을까 해요.

하지만 직장 상사한테는 어떻습니까.

회사 사장님이나 이사님, 부장님한테 가서 그럴 수 있어요? 아니, 사장님, 월급이 너무 적어요. 복지가 너무 형편 없어요. 휴일 좀 늘려주세요. 사람이 너무 부족해서 힘들어하는 것 안 보이세요?

여러분께서는 그러실 수 있습니까. 사실 직장생활을 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그럴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회사에 대한 불만, 상사에 대한 불평불만이 있더라도 자기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꾸욱 참으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니겠어요?

자, 그런데 이 점 만을 보세요. 벌써 하나님보다도 직장 상사를 더 어려워하고 있고, 더 조심스러워 하고 있고, 나아가 더 두려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다니고 계신 직장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세계적인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거기 상사나 하물며 사장님 회장님이라 하더라도,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직장 상사는 사장님이든 회장님이든 간에 그 회사에 있을 때나 상사인 것이지 그 사람이 나가든지 아니면 내가 나가면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뭐, 회사원들 만이 아니에요.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나 총리라고 하더라도, 현직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다 설설 기지만, 한 번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신경이나 씁니까.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직장 상사를 무시하라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존중하고 공경하고 그리고 업무지시가 있으면 거기에 따라야죠.

하지만 우리는 직장 상사나 세상적인 권세자들 무서운 줄은 알면서도 정작 하나님 무서운 줄은 모르고 사는 분들,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께 대드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요즘만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옛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어요.

말라기 1장 7절~8절
“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본래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들은 어떤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습니까.

율법에 의하면 양이든 염소든 송아지든 그 제사에 따라서 규정된 가축들의 종류들은 다양합니다만, 공통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바로 ‘흠 없는’이라는 조건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 앞으로 가져오는 제물들을 보면 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눈 멀고, 다리를 절고, 병 들어서 쓸모 없게 된 가축들, 그야말로 흠 투성이의 가축들이라고 하세요.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그 가축들을 너희 총독에게 가져가면 좋아하겠느냐 하시는 것이지요.

예전에 어떤 교회에 보니까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 교회에서는 예전에 헌금 시간 때에 헌금 주머니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 본당 출입문 쪽에 헌금함을 마련해 놓았대요.

그러면서 성도님들이 자율적으로 헌금할 수 있도록 했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냐 하면, 물론 정성을 담아서 깨끗한 헌금봉투에 넣어서 바치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고는 합니다만, 그 중에는 뭐, 안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봉투만 들어있거나, 하물며 주보나 쓰레기들을 꼬깃꼬깃 접어서 넣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헌금을 내기는 아깝고, 하지만 사람들 보는 눈은 있고 하니까 내는 시늉만 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자,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누구 눈치를 보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 눈치입니까. 아니면 사람들 눈치입니까.

이는 그야말로 외식하는 사람들, 알맹이는 없고 겉치레만 신경 쓰는 바리새인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거저 줘도 안 받을 가축들, 빈 봉투나 쓰레기 같은 것들을 헌물로 바친다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면, 그것도 모르는 하나님한테 소원을 들어 달라면서 기도를 해요?

참으로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태냐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하나님이라고 하는 분은 우리가 기도라고 하는 결제서류만 갖다 내면 그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장만 찍어주어야 하는 기계입니까. 그게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에요?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은 그렇게 생각하실 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겨 주셔서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주실 정도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혹시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제가 기회가 될 때마다 말씀 드리고 있지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 이는 오로지 한국 교회에서만 나오는 말인데, 이는 마태복음 16장 26절 말씀을 오해한 해석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 말씀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뜻이에요?

아니에요. 그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의 목숨을 잃으면 천하를 얻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씀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경에서 우리 영혼의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야고보서 4장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예, 여러분께서 실망하시는 분도 계실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기는커녕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성경은 말씀하세요.

여러분, 성경에는 심판이 없습니까.

구약에 보세요. 죄에 물든 가나안 사람들을 이스라엘 자손을 통해서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보세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족들만 빼고 불과 유황으로 초토화시켜버리지 않았습니까.

노아의 홍수는 어떻습니까. 전세계 인류를 모두 멸망시키시고 오직 노아의 가족들만 구원하셨잖아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해요? 아니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혼은 그야말로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영혼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멸망의 늪에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지요. 영원한 죽음이라고 하는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대신해서 그야말로 온 천하만물보다 귀하신 독생자 예수님의 목숨을 십자가 위에서 무참히 죽이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죽어 마땅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또한 우리를 대신해서 용서 받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완전한 멸망 대신 영원한 구원을 얻고 완전한 죽음 대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마음먹으시면 우리의 영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목숨마저도 아끼지 않으신다는, 참으로 무서운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21절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에 대한 말씀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순종한다면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이라 하더라도 심판을 피할 수 없는데 하물며 이방인이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들어요.

하나님께서는 그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 예수님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으셨는데, 만약 우리가 불순종하게 된다면 우리의 생명을 아끼시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를 모르는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을 너무나도 만만하게 보고 있어요. 얼마나 멋도 모르고 기어오르는지 모릅니다.

자기 직장 상사, 과장, 부장이나 사장님 앞에서는 꼼짝 없이 한 마디도 못하면서, 하나님을 우습게 알고 무슨 자기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꿔준 돈 갚으라는 식으로 하나님한테 큰 소리를 칩니다.

아이, 뭐, 사장님이야 면전에서 말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안 보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러시겠습니까.

여러분께서는 ‘코람 데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또는 ‘하나님 면전에서’라고 하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기록합니까.

예레미야 23장 24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는 천지에 충만하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골방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우리 눈에 안 보인다 하더라도, 그곳은 하나님 면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서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들으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눈에 안 보인다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지겠습니까.

마태복음 10장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누가복음 12장 4절~5절
“4.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여러분, 우리가 두려워할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나와 상관이 없어지는 지금의 직장 상사나 세상 권세자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존중은 해야겠으나 어찌 하나님과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온 제단의 불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드리는 제물을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무서운 심판으로 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의 근본이요 진정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34편 9절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이제 우리에게 한없는 축복을 내리실 수도 그리고 심판을 내리실 수도 있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고,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 멸망 대신 구원을, 사망 대신 영생을 얻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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