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5회 [요한계시록 제38회] 부요해지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 - 이루리라교회 홍성필 목사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19절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설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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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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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38번째 시간으로서 “부요해지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라오디게아 교회로 보내지는 편지의 첫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았지요.

여기에는 우선 수신하는 교회와 발신자의 권위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의 경우에는 대부분 칭찬의 근거가 나오는데 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우에는 칭찬의 근거가 없이 곧바로 책망의 근거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책망하시면서 이와 같이 미지근한 교회는 입에서 토해 버리시겠다고까지 말씀하세요.

이는 지난 시간에 알아본 것처럼 뜨겁다는 것은 신앙적인 행함과 차갑다는 것은 실천적인 행함이라는 뜻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사실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는 참 안타깝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일곱 교회 중에서 에베소에 대해서는 사도행전이나 고린도전서 등에서 수 차례 언급되어 있습니다만, 두아디라에 대해서는 사도행전에서 그 지명이 딱 한 번, 그 외의 교회인 서머나, 버가모, 사데, 빌라델비아 같은 지명은 이 요한계시록에 밖에 안 나옵니다.

그런데 이 라오디게아에 대해서는 대단히 독특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바울에 의해 기록된 골로새서에 자주 등장해요.

이 기록에 보시면 바울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골로새서 2장 1절~2절
“1.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바울이 골로새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기를 자신이 라오디게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단히 많이 애를 썼다고 하는데 이는 다름아닌 그만큼 열심으로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알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지요.

그 뿐만이 아니에요.

골로새서 4장 12절~13절
“12.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여기에 보시면 에바브라라고 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골로새서 1장 7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라고 하고, 또한 빌레몬서 23절에 의하면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과 함께 갇히기도 했을 정도로 열성적인 동역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도 역시 바울처럼 라오디게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많이 수고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이어서 또 볼까요?

골로새서 4장 15절~16절
“15.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이 골로새서는 바울이 골로새에 있는 교회 앞으로 보낸 서신입니다만, 여기서 바울은 그 서신을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읽도록 하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볼 때 바울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해서 상당히 힘을 쏟았을 뿐 아니라, 그의 동역자였던 에바브라도 역시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해서 많은 헌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그렇다면 라오디게아에는 적어도 다른 교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복음이 전해졌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지 않습니까.

다름아닌 바울이 이토록 열심을 다해 헌신을 했고 뿐만 아니라 동역자 에바브라까지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평가에는 칭찬의 근거가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처음 말씀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거예요.

신앙적인 행함도 없고 그렇다고 실천적인 행함도 없는 그저 뜨뜨미지근한 그들에 대해서 주님은 토해 버리시겠다고까지 하시잖아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책망의 말씀은 이어집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중에서 17절~18절.

요한계시록 3장 17절~18절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개역개정에서는 17절 말씀 중에서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생명의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
“너는 부자라서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말씀을 들으면 바울이나 에바브라가 그토록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라오디게아에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단히 부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에요.

실제로 역사적인 자료에 의하면 라오디게아라고 하는 곳은 실크로드 교차로에 위치해 있어서 무역, 금융업, 직물 산업 등이 매우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대단히 윤택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이처럼 부유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지적하세요.

그러면서 18절에 의하면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대다수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니, 무슨 소리야. 우리가 뭐가 부족한데?

돈이나 재산은 이 정도 있으면 된 거 아니야? 우리가 벌거 벗었다니.

옷장에는 계절마다 입을 옷으로 가득 찼어.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것은 무슨 뜻이야.

우리가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있다는 말씀이야? 무슨 소리. 이래봬도 우리는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라구.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합니다.

만약 한국에서도 좀 잘 사는 동네에 있는, 돈 많은 큰 교회에 가서 거기 임원분들, 말하자면 장로님들이 모인 곳에 가서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은 정말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 먼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세요. 그리고 안약을 발라서 제대로 보고 사십시오.”

만약에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그 자리에 믿음이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셨다 하더라도 “아멘, 맞습니다”라고 하실 분이 얼마나 계시겠습니까.

잘못하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한다고 혼쭐이 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 중에서 한 말씀을 살펴볼까요.

누가복음 6장 20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자,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이 축복은 아니지요. 가난은 고통이자 고난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이런 말씀을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앞에 가서, 가난한 여러분들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라고 해보세요. 그 분들이 좋아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이 말씀은 경제적인 재물이 부족한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에요.

이 말씀에 대해서 마태복음의 기록을 볼까요?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 여기서는 그냥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 즉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기록합니다.

자, 우리 한 번 생각해봅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과 가난하지 않은 사람, 어느 쪽이 행복할까요.

이는 마음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마음 또한 가난해서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뜻일까요.

여기서 좀 다른 각도로 살펴볼까 합니다.

지금 눈 앞에 두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들한테 목이 마르냐고 물었습니다.

한 사람은 목이 마르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목이 안 마르다고 했어요.

두 사람에게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은 마셨고 다른 한 사람은 안 마셨어요.

그렇다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물을 마셨을까요.

예, 그렇죠. 목이 마르다고 한 사람은 물을 마셨을 것이고, 목이 안 마르다고 한 사람은 물을 안 마셨겠지요.

하지만 사실은 이 두 사람 모두 목이 마른 상태였다고 하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 하시겠습니까.

자기가 목이 마른데 그 사실을 모른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예, 사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있어요.

사막지대 같은 데에 보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제가 여름날에 서울시내로 전도를 나가면 땀이 얼마나 많이 나는지 몰라요.

원래 제가 땀이 많은 체질인데 특별히 요즘 여름철 같은 날에 나가면 땀이 정말 비 오듯이 납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게 되면, 아, 내 몸에서 수분이 이렇게 많이 빠져나가는구나 하는 것을 보고 갈증을 느끼게 된다고 해요.

그런데 사막 같은 데에 보면 더운 건 맞는데 습도가 낮아서 매우 건조해요.

그렇게 되면 아무리 더워도 땀이 안 난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는 거겠어요?

아니에요. 사실은 땀을 많이 흘리고 있지만, 땀이 나는 순간 곧바로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살이 뽀송뽀송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신기하게도 갈증이 안 느껴진대요.

왜냐하면 날은 덥지만 땀이 전혀 나지 않거든요.

그러면 분명 자기 몸에 수분이 부족하지만 그 사실을 못 느낀다는 거죠.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 계속 물을 안 마시면 어떻게 되냐 하면, 머리가 아파지고 몸상태가 대단히 안 좋아진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럴 때에는 갈증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억지로라도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어요.

그런데 누구는 물을 달라고 하고 누구는 물이 필요 없다고 해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물이 필요한 줄 아는 사람과 물이 필요한 줄 모르는 사람인 것이지요.

여기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씀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심령이 가난한 줄 아는 사람, 자신에게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을 찾아 헤매고는 물을 구했을 때 기쁨으로 그 물을 마시게 됩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줄 모르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물이 주어져도 안 마셔요. 나는 목이 마르지 않은데 왜 자꾸 물을 주느냐고 그러면서 끝까지 거부해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몸은 메말라갑니다. 바싹바싹 타 틀어가고 마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7장 37절~38절
“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지금 눈앞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생수가 터져 나오고 있어요. 돈을 낼 필요도 없어요. 우리는 어서 가서 마음껏 마시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은 목이 안 말라요.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결국 주님을 눈앞에 두고도 그 물을 마시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많은 것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만큼 가졌고, 이만큼 배웠고, 그리고 이만큼 안다면 틀림없이 구원 받지 않겠어? 나 정도면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내가 내 목이 마른지 안 마른지도 모를 것 같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 생각입니다.

그래요.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가졌다면 누가 무시를 합니까. 권력을 가졌다면 누가 얕잡아 보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이 세상에서도 항상 어디서나 통할까요?

얼마 전 있었던 선거방송을 보니까 흥미로운 장면이 있더라고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재벌 회장님이 선거를 하러 투표장에 가신 거예요.

한국사람이라면 그 분이 누구인지 다 알아요. 그리고 한국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돈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분은 투표장에 가기만 하면 투표를 할 수 있어요?

돈이 많다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투표를 할 수 있어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과 권력이 있다고 해도 뭘 해야 돼요? 예, 신분증을 제출해야 돼요. 본인확인절차를 거쳐야지만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반대로 아무리 가진 것이 없고 사회적 지위도 없다고 해도 신분증만 있다면 얼마든지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거기서는 재산이나 세상적인 지명도가 문제가 아니에요. 거기서 정해진 절차가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로마서 4장 25절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아무리 배운 것이 많고 아무리 가문이 좋다고 해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 소용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강권하십니다.

그래요. 정말 회개는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열심을 내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아니, 내가 뭘 그리 잘못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성경은 뭐라고 하십니까.

로마서 3장 10절에서도 말씀하시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의인이 없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보혈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말씀이거든요.

내가 몸이 안 좋아요. 소화도 안 되고 배가 아프고 그래서 정말 하루하루가 힘들어요.

그러면 병원에 가겠지요.

그리고 검사도 하고 그랬는데, 마지막에 가서 의사가 말하기를 아무리 검사를 해도 이상한 데가 없다고 그래요.

그러면 그게 축복인가요? 여전히 배가 아프고 몸이 안 좋은데요?

그게 아니라 제일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아, 검사를 해보았더니 어디어디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약을 먹고 이런 치료를 합시다. 그러면 금방 낫습니다. 그게 좋은 소식 아니겠습니까.

병원에서 검사를 하는 것은 좋은 곳을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 좋은 곳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잖아요.

그 병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 때로는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여러가지로 열심히 검사를 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잘못한 것을 찾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을 찾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예,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부족한 것을 알고, 아무리 잘났든 못났든 간에 우리도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우리 이웃 또한 사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아무리 뛰어난 믿음의 선배라 하더라도 다들 흠이 있지 않습니까.

노아도 포도주를 과음해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으로 애굽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아내를 빼앗길 뻔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에 반해 이스마엘을 낳게 되기도 합니다.

모세는 자기 힘으로 민족을 구하려다가 결국 광야로 도망치게 되잖아요. 다윗이나 솔로몬도 흠이 있습니다.

신약에 오면 어떻습니까. 신약을 대표하는 베드로나 바울은 흠이 없었나요?

제자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기고만장했던 베드로, 작은 일에도 나서기 좋아했던 베드로였지만 끝에 가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그것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바울은 또 어떻습니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지금으로 본다면 명문대를 나와서 고시에 합격한 청년 엘리트 관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 모두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어요.

자신의 부족한 부분, 부끄러운 부분을 모두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바울은 뭐라고 고백합니까.

고린도전서 2장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지식, 배경, 가문, 학벌, 사회적 지위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나는 너무나도 흠이 많은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는 내 능력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의지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께서 바라시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주님이라고 하는 생수가 필요한 심령이 가난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열심으로 철저히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주님께서 주시는 의의 흰 옷을 입고 주님 만을 바라보며,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부유한 주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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