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3회 [요한계시록 제36회] 이기는 자에게 기록될 세 이름 - 이루리라교회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2절~13절
“12.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설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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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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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36번째 시간으로서 “이기는 자에게 기록될 세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빌라델비아 교회로 보내지는 편지에 대해서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이 되겠습니다.

오늘 살펴볼 내용은 12절과 13절인데, 이 12절 한 구절에도 너무나 많은,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집중에서 귀를 기울여서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우선 첫 부분부터 살펴볼까요?

12절은 “이기는 자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는 지난 시간에 알아본 바와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인내의 시간 동안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주님과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이긴 자로서 인정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여길 보시면 “이긴 자”라고 되어 있지 않고 “이기는 자”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는 무슨 뜻입니까.

예, 아직 이겼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그 시기가 다가오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어떤 사이비 집단의 교주는 자신을 ‘이긴 자’라고 가르친다고 해요.

뭐, 생각이야 자유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장일 뿐입니다.

이는 마치 그런 것이지요.

아직 올림픽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아니, 그보다도 자기가 아직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고 있는데 벌써부터 자기는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겼는지 아닌지를 자기가 판단합니까.

경기는 선수들이 하고 이겼는지 아닌지는 심판이 판정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요. 뭐,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린 아이가 그러고 있다면 귀엽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나이를 잡수실 만큼 잡수신 사람이 그러고 있다면 이는 적지 않게 심각한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그 날까지, 또는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을 통한 행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주님으로부터 이긴 자로 인정함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기는 자에게는 어떠한 상이 주어진다고 하세요.

예, 하나님 성전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을 듣고 상당히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아니, 사실 그렇잖아요.

기둥이 뭐예요.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맨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참 기둥이 되면 얼마나 갑갑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여러분 중에도 혹시 그런 생각을 가져 보신 분이 계신가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는 그와 같은 뜻이 아니지요.

한 건물에 있어서 기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 말 하면 잔소리죠.

기둥이라고 하는 것은 그 건물을 받치고 있는 것인데, 기둥 없이는 그 건물이 유지될 수 없잖아요.

예를 들어서 이런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어느 날 전화가 옵니다. 받아보니 청와대 비서실이래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대통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생님께서 청와대의 기둥이 되어 달라고 하십니다.”라고 했다고 한다면, 아니, 실제로 그랬다는 게 아니라, 만약에 그랬다면요. 그렇다면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설마 낮이나 밤이나 청와대에 들어가서 가만히 서 있으라는 뜻이겠어요?

아니요. 그렇지 않지요.

그것이 아니라 들어와서 국가의 중요한 일을 맡아 달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현재 한국의 경우에는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 따라서 들어가도 길어 봤자 5년밖에 기둥이 될 수 없겠지요.

옛날 조선시대 때 같이 왕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데, 그 시절 대궐의 기둥이 되어 달라고 했다고 해도 왕의 수명이 100년도 안 되잖아요.

아무리 충신이라고 해도 왕이 죽으면 적어도 그 측근들은 대부분 다 물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수명이나 임기가 몇 년이에요?

여기에 대한 답이 성경에 있습니다.

시편 90편 2절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예, 그렇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세상 천지만물이 생기기 전부터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미래로 본다면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 성전의 기둥, 하나님 나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그릇으로 등용해 주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나가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넘치는 영광, 한량없는 은혜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들으시는 분들 모두가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놀라운 영광과 은혜를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그 후반부 부분을 보실까요?

그 이기는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징표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징표를 보면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요한계시록 3장 12절 후반부
“12……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자, 이 구절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고 계세요.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 위에 이름을 기록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름의 종류를 보면 세 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첫째는 하나님 이름이요, 둘째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요, 셋째는 나의 새 이름, 그러니까 주님의 새 이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저는 이 구절을 처음 읽을 때, 무릎을 치면서 “아하, 그러면 그렇지”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럼 저는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읽고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나의 새 이름”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나’라고 하는 분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흥미롭지 않으세요?

예수님께서는 장차 이기는 자 위에 예수님의 새 이름을 주신다는 뜻이잖아요.

이 말씀을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예수님의 새 이름? 아니, 그럼 예수님이 진짜 이름이 아니야?”라는 마음이 안 드시겠어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말씀을 읽었을 때, 그래, 그럼 그렇지, 예수님한테 진짜 이름이 있을 줄 알았다니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에요.

자, 성경에는 많은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물론 대부분이 사람들의 이름이지요.

그렇다면 천사 이름은 어떨까요?

성경 외의 다른 자료에 보면 여러 이름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성경에서 개별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천사는 미가엘과 가브리엘, 단 둘뿐입니다.
종종 등장하는 스랍이나 그룹 같은 경우에는 개별적인 천사 이름이 아니라 말하자면 천사 종류를 가리키는 명칭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가엘과 가브리엘 외에도 천사가 등장하기는 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천사에 대해서는 이름이 안 나옵니다.

사사기 13장에 보시면 사사 삼손이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알렸을 때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그러자 그 사자는 대뜸 마노아에게 이렇게 말해요.

사사기 13장 18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마노아는 단지 천사의 이름을 물어보았을 뿐인데 천사는 자신의 이름을 ‘기묘자’라고 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기묘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필리’라는 단어는 형용사인데, 기이하다, 측량할 수 없다, 비밀스럽다는 뜻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천사의 이름이 말 그대로 ‘기묘자’라는 것일까요?

이와 비슷한 말은 다른 곳에도 등장합니다.

이사야 9장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여기에서의 ‘기묘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펠레’라는 명사가 사용되었는데 기적, 놀라움, 경이로운 것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사사기에서 사용된 형용사 ‘필리’와 이사야서에서의 명사는 ‘펠레’라는 모두 동사인 ‘팔라’에서 유래된 말인데 이는 기이하다, 놀랍다, 초월하다, 구별하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신학자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이 단어의 해석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의 사용에 있어서, 용법에 있어서의 일관된 뜻은 뭐냐 하면 우리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능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앞서 사사기에서의 말씀처럼 천사의 이름이 기묘자 즉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천사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 그가 자신의 이름을 두고 ‘기묘자’라고 했던 이유는, 아마도 천상에서 사용되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줘 봤자, 우리와 같은 인간이 이해할 수도 없고 알아들을 수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사야 9장 6절도 새롭게 이해됩니다.

앞서 살펴본 이사야 9장 6절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이사야 9장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구절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자 구세주이신 메시야 탄생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기묘자’라고 한다는 것이에요.

이 뒤에 나오는 단어들, 모사는 돕는 이라는 뜻이고 그 뒤에 나오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하는 말들은 모두 장차 태어날 아기에 대한 속성을 가리킨다고 하겠지요.

여기서 구체적인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예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예언이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여기서 구체적인 이름이 밝혀지게 된다면 너도나도 자기가 그 이름이라고 하면서 자기를 메시야라고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 이름을 가렸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이름이 가려진 또 하나의 이유는 ‘기묘자’ 즉 그 이름을 들어봤자 우리 인간으로서의 인식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예수’라고 기억하잖아요.

복음서에도 분명히 ‘예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가짜라는 것이냐 하는 의문이 생기잖아요.

만약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의 진짜 이름이 ‘예수’가 아니라면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제가 어린 시절 일본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일본에 처음 간 것이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초등학교는 동경한국학교 초등부를 다녔으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중고등학교는 완전 일본학교를 나왔거든요.

그러다 보니 생긴 문제가 바로 이름이었습니다.

일본 발음인 경우에는 한 글자의 음이 니은이나 모음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제 이름은 어떻습니까.
홍, 성, 필, 세 글자 모두 니은으로 끝나거나 모음으로 끝나지 않아요.

이응과 리을, 이렇게 모두 자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를 일본어로 발음하거나 표기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래서 일본식으로 표기하거나 발음하면 ‘홍성필’이 아니라 ‘혼 손 삐루’가 되거든요.

간혹 보면 재일교포의 경우 통칭명이라고 해서 일본이름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한국 공무원 집안이고 하니 중고등학교 모두 그냥 ‘혼 손 삐루’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나중에 선교사로 갔을 때에도 여전히 저는 ‘혼 손 삐루’에요.

거기서 아무리 우리나라 발음인 ‘홍성필’을 고집해봐야 알아듣는 사람들도 없고, 그리고 일본어로 정확하게 표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혼 손 삐루’가 제 유일한 이름이었던 것이지요.

자,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왜 오셨습니까.

사람들은 진정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랑을 직접 보여 주시러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진정한 순종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직접 보여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진정한 부활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친히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은 너무나도 소중해요.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처럼 예수님의 이름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그 이름으로, 그 순종으로, 그 보혈로, 그리고 그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주님께서는 주님의 이름,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정작 그 이름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일본에 보면 '라쿠고(落語)'라는 이야기 중의 한 대목에 ‘주게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어요.

일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거기에 보면 긴 이름을 가진 사람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름이 얼마나 기냐 하면, 잘 들어보세요.

주게무 주게무
고코오노 스리키레
카이쟈리 스이교노
스이교마츠 운라이마츠 후우라이마츠
쿠우 네루 토코로니 스무토코로
야부라 코오지노 부라코오지
파이포 파이포 파이포노 슈우린간
슈우린간노 구우린다이
구우린다이노 폼포코피이노 폼포코나아노
초오큐우메이노 초오스케

이게 그 한 사람의 이름에요. 물론 실제 있었던 이야기는 아니구요.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런 식으로 길고 어려운 이름이 너희들이 의지해야 할 이름이라고 말씀하셨더라면 어쩔 뻔했습니까.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이름인 예수,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가 쉽게 의지할 수 있는 ‘예수’라는 이름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거룩한 이름으로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 이름이 아니라면 별로 중요하지 않네……라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늘의 본래 이름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부르고 의지할 수 있는 '예수'라는 귀한 이름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장차 이긴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함을 받게 된다면 그 때 진정한 예수님의 새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지만, 그 때까지는 우리가 의지해야 할 이름은 오직 우리 구주 예수님이라고 하는 이름 뿐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다시 12절 말씀으로 돌아가볼까요?

12절에서는 세 이름이 등장했지요?

첫째 이름은 하나님 이름이요, 둘째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요, 셋째는 나의 새 이름, 그러니까 주님의 새 이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님의 새 이름에 대해서는 알아보았고, 다음은 하나님 이름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여러분께서는 하나님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예, 한국 개역개정 성경에는 ‘여호와’라고 되어 있지요.

예수님의 발음도 각 나라에 따라서 조금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예수’, 일본은 ‘이에스’, 영어권 ‘지저스’라고 하지요.

하나님의 이름도 역시 달라요.

우리나라는 ‘여호와’ 또는 ‘야훼’라고 하기도 하고, 일본은 주로 ‘에호바’라고 하는데 간혹 ‘아하웨’라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권에서는 ‘제호바’라고 해요.

그렇다면 이 중에서 어떤 발음이 정확한 하나님의 이름일까요.

예전에 기독교인인 이스라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물어봤어요.

각 나라마다 하나님 이름의 발음이 다른데 이스라엘에서는 어떻게 발음하냐고 했더니 곧바로 ‘야훼’라고 하더라구요.

그럼 이스라엘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정확한 하나님 발음은 ‘야훼’구나……

이렇게 알면 되는 걸까요?

정답부터 말씀 드리자면, 여기에 정확한 발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자음, 영어식으로 말하자면 YHWH만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를 발음할 수가 없잖아요.

제 이름으로 본다면 “홍성필”중에서 “히읗, 시옷, 피읖”만이 기록되어 있다면 이를 어떻게 발음할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여기에 히브리어로 ‘나의 주님’을 뜻하는 ‘아도나이’의 모음인 ‘a, o, a’를 붙여서 ‘여호와’ 또는 ‘야훼’로 읽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되니까 이제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진정한 하나님의 이름을 알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는 무슨 이름이에요?

예,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다고 하는데, 나중에 공부하게 될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그야말로 장차 이긴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게 될 곳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다고 하면 어디에 내려오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예전에 보면 누구는 한국에 내려온다고 막 큰 소리로 주장하고 그런 사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이는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어디에 내려온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만약에 그게 중요하다면 맨날 하늘만 보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곳은, 하늘에서 내려올 때 가까운 데에 있으면 들어갈 수 있고 멀리 있으면 못 들어가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학교도 그렇잖아요.

좋은 대학교 근처에 살면 들어가고 멀리 있는 곳에 살면 못 들어갑니까.

새 예루살렘은 언제 어디로 내려올지도 모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려온 후에 그곳이 '새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불릴지 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몰라요.

자, 이렇게 본다면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 위에 기록된다는 이름,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그리고 우리 주님의 새 이름을 본다면 모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름이에요.

이처럼 성경에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도 상당수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반면에 그 때가 이르기까지 가려진 내용 또한 적지 않다는 점도 우리가 유념해야 합니다.

신학자나 종교지도자 정도 되는 분들은 간혹 의무감이나 자존심 때문인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전승이나 외경 등을 근거로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답을 말해주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자칫 성경을 왜곡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은데 진짜 하나님 이름은 이거다, 새 예루살렘은 어디에 내려온다, 그리고 하물며 예수님의 진짜 이름은 뭐다라고 주장을 한다면, 그게 사이비지 뭐가 사이비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에는 많은 비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그 비밀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시기를 원하고 계세요.

오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 이름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우리가 거하게 될 새 예루살렘의 이름, 그리고 장차 드러나게 될 주님이 새 이름이 하나님의 백성 위에 기록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힘써야 할 일은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 이름을 알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이름이 기록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비밀을 캐내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이기는 자에게 그 이름을 기록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끝까지 믿음을 지켜 하나님께 인정받는 이기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처럼 우리는 성령님의 말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 우리의 신앙을 끝까지 지킴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 심판의 날에 주님으로부터 이긴 자로서 인정함을 받아, 마침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어 주님으로부터 크게 쓰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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