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9회 [요한계시록 제32회]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 - 이루리라교회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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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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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32번째 시간으로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계시록 강해를 이어오면서 일곱교회에 대한 내용을 살펴오다가 지난 2회에는 잠시 원죄에 대해서 살펴 보았었지요.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본문 말씀에 따라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번까지는 일곱교회 중에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그리고 사데교회, 이렇게 다섯교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제 여섯 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도 정보량이 많기 때문에 몇 번에 나누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만, 우선 이 교회에 대한 편지에 있어서 주목해 볼 부분은 앞서 살펴본 두 번째 교회인 서머나 교회 때도 그랬던 것처럼 책망의 말씀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주님 안에서 그만큼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교회라는 점을 알 수 있겠지요.
자, 우선 오늘은 이 놀라운 복된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편지의 첫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요한계시록 3장 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지금까지 다른 교회로 보내졌던 편지와 마찬가지로 도입부에서는 수신하는 교회와 발신자의 권위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수신하는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인데, 이 다음에 주목해야 할 부분이 나오지요.

발신자의 권위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 이사야서를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 22장 22절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여기서는 유다의 히스기야 왕 당시 셉나라고 하는 관리가 국고를 맡고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권위를 믿고 사치를 하고 그랬기 때문에, 셉나로부터 권한을 빼앗고 그가 가지고 있던 다윗의 집의 열쇠를 엘리야김에게 넘기겠다고 하신 말씀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당시는 히스기야 왕 시대였기 때문에 다윗 이후로 한참 세월이 지난 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윗의 집의 열쇠’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단순히 ‘다윗 왕’ 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다윗 왕조 전체의 권위를 상징하는 말씀이기 때문인 것이지요.

여기서 ‘다윗의 열쇠’라고 한다면 이는 형식적인 권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세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기 쉽게 본다면 애굽 총리로 취임했을 때의 요셉에서 그 장면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창세기 41장 40절~43절
“40.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총리 요셉 이전이든 이후이든 애굽에서의 절대자는 여전히 바로 왕입니다. 그러나 바로 왕이 뭐라고 합니까.

자신이 요셉보다 높은 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이 왕좌 즉 왕이라는 자리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요셉더러 네가 다스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신학적으로는 이 요셉이 장차 오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요한복음 3장 35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요한복음 17장 2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빌립보서 2장 10절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님께 모든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모든 결정은 하나님 결정과 동일하고 참되고 완전하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권세,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무엇을 하신다고 하세요.

예, 문을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는 권세가 있다고 오늘 본문에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열고 닫으시는 문은 무슨 문을 뜻하는 것일까요.

이도 역시 앞서 살펴보았던 이사야서 22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셉나가 가지고 있던 권한을 엘리야김에게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셉나가 맡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 드렸는지 기억하십니까.

이사야 22장 15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예, 그렇죠. 셉나가 맡고 있던 것은 바로 국고를 맡고 왕궁을 맡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단순히 문을 열라고 하면 예, 하고 가서 여는 그런 심부름꾼이 아니라 예산집행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왕궁에 대해서도 맡고 있었다고 하니, 이는 실질적으로 그 나라에 있어서의 모든 권한을 다 장악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도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것은 천국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았다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를 잘 모르는 분들이 계세요.

누가 몰라요? 예, 바로 신앙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저 막무가내로 기도에만 열중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할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정말 그 때마다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수심에 가득찬 표정으로 그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기도만 드리는 것이 진정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일까요.

어떠한 시련이 닥쳤을 때 정말로 다윗의 열쇠,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을 믿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같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시련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믿음이 약할 때, 그리고 믿음이 강할 때를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에 대해서 볼까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어도 허탕을 쳤었지요.

그에게는 아직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와 같은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5장 4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여기서의 ‘시몬’은 베드로를 가리키는데, 어부도 아닌 예수님께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세요.

하지만 그런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믿음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사실 베드로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대요?

누가복음 5장 6절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렇죠. 고기를 많이 잡았어요. 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 그물이 찢어졌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고기가 많아서 찢어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제 추측이 아니라 바로 성경에 그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 때, 역시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다는 기록이 나오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처음 베드로가 그물을 던졌을 때와는 분명 차이가 있어요.

요한복음 21장 11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베드로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넘치는 축복을 줘도 믿음이 없는 그는, 마치 고기를 많이 잡아도 찢어지고 마는 그물과도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4장 19절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렇죠. 믿음이 없고 아는 것이 없으니 예수님께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믿음이 성장했어요. 더 이상 그물이 찢어지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요한복음 21장 15절~17절에 걸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는 그에게 주님의 사도로서 사명을 주고 계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시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 증거로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를 목도했을 때 그들은 뭐라고 합니까.

출애굽기 14장 10절~12절
“10.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지금 뒤에서는 애굽의 바로 왕이 친히 최정예부대를 이끌고 추격해 옵니다.

그런데 앞에는 끝없는 홍해바다가 가로막혀 있어요. 그들에게는 그 어떤 한 줌의 믿음조차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놀라운 재앙을 내리면서 그들을 이끌어 내셨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있었던 것은 그저 찢어지는 그물과도 같은 믿음 밖에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와 같은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종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4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래, 지금 너희들은 그저 가만히 있어라. 그것 만으로 족하다. 그러는 것이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죠. 홍해를 가르시고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신 반면에, 그들을 추격하던 대적 애굽 군대들은 모조리 전멸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믿음이 부족했던 그들에게는 축복이 쏟아졌나요?

아니요. 믿음이 부족한 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줘봐야 찢어진 그물에 고기 채우기,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축복이 아니라 믿음의 성장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로 내보내시고는 율법을 주어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세요.

신명기 8장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앞서 믿음이 없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셨던 것처럼, 역시 믿음이 없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훈련을 시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그리고 이를 통하여 그들의 신앙을 성장시키셨던 것입니다.

이제 믿음이 장성하여 찢어지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된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할 때,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수아 3장 8절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예, 그렇습니다. 이제 가만히 있으라고 안 하십니다. 보고만 있으라고 하지 않으세요.

너희들이 찢어진 그물이나 밑 빠진 독이 아닌, 넘치는 축복을 받아 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것을 보여줘봐.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직 강물이 집어삼키듯이 흐르고 있는 그 곳에 들어 가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요단강 물 속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애굽에서 갓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그러나 40년이 지나고 믿음이 장성한 그들은 달랐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는 언약궤를 멘 채 저벅저벅 요단강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수아 3장 15절 이하에 의하면 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모두 물에 잠겼더니, 그 때까지 흘러내리던 요단 물이 그쳐서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마른 땅을 건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무슨 크고 작은 시험이 닥쳐왔을 때 그저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아이구, 주여,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하면서 그저 울부짖기만 하는 믿음이 좋은 믿음입니까.

오히려 그것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히브리서 5장 12절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3장 2절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원하신다면 요단강이 아니라 홍해바다, 아니, 태평양이라 하더라도 순식간에 마르게 해 버리실 수도 있으세요.

욥기 41장 11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 것이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가나안 땅이 아니라 전세계의 땅, 전세계의 금은보화를 하루 아침에 넘치도록 주실 수도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젊은이, 그것도 이방 땅에서 건너온 한낱 노예에 불과했던 요셉도 하루 아침에 당시 최강국이었던 애굽의 총리로 세우실 수도 있는 하나님 아니십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이 고작 물고기 몇 마리에도 찢어질 그물이요, 밥알 몇 톨조차 제대로 씹을 수 없는 어린 아이 믿음 밖에 안 된다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부어 주시고 싶어도 못 주시는 것이지요.

역사적으로도 보십시오.

젖먹이 아이에게 온 나라를 준다면서 황제 자리에 앉힌다면 그게 축복입니까. 아닙니다. 그건 저주예요. 그 앞에 있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예, 그것은 바로 찢어지지 않는 그물, 파도치는 홍해 바다에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믿음, 아무리 단단한 음식이라도 씹을 수 있는 강력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오해를 하실까봐 말씀을 드립니다만 저는 기도를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무조건 기도만 하는 것이 능사인가 하는 것이지요.

자기는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만 하고 있으면 남겨진 사람들은 어쩌라구요.

오히려 문제나 시련이 닥쳐오면 믿음을 가지고 담대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힘을 합쳐 헤쳐 나가고,

그리고 모든 것이 해결되었을 때 기쁨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죽어라고 기도하면 돈 몇 푼 쥐어 주고, 병 조금 낫게 해주고, 문제나 좀 해결해 주고, 그 정도 밖에 안되는 분이세요?

아닙니다.

요한복음 1장 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예수님이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온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죠. 놀라운 축복을 담아낼 수 있는 튼튼한 믿음, 강력한 믿음,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를 뒤집어 보면 무엇입니까.

예,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도 문제가 해결 되었어요?

그것은 어쩌면 내 믿음이 약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그 너머에는 믿음의 성장을 위한 광야나 새로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크고 작은 시련을 겪고 있는 것 같으신가요? 많이 힘드십니까?

그것은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 바로 그 너머에 젖과 꿀이 흐르는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고 기뻐하며 찬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8장 18절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다면, 장차 우리 앞에 나타날 영광은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축복이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렇죠.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때로는 하나님 나라의 곳간을 닫으실 때도 있어요.

우리 앞길을 닫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설마 우리에게 주시기 아까워서 그러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목숨까지도 우리를 위해 주셨는데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으시는 것은, 그것은 다름 아닌 아무리 큰 축복이라도 담아낼 수 있는 튼튼한 그물과도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부드러운 음식이 아닌 단단한 음식도 감당할 수 있는 믿음, 강하고 담대하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요단강에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믿음의 용사가 되도록 성장시키시기 위해서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한 번 여시면 그 누구도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지요.

천사들이 말합니다. 주님, 이거 축복을 너무 많이 부어 주시는 것 아니에요?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시죠. 아니야. 말리지 마.

아직 부족해. 더 많이, 더 넉넉히, 더 넘치도록 부어줘도 이제 충분히 담아낼 수 있어.

그와 같을 때가 분명히 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우리를 위해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의 앞길을 열어 주시는 주님을 믿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 감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과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모두 돌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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