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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27번째 시간으로서 “율법과 복음”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강해를 본다면 벌써 27회째인데 아직 3장 처음부분이라고 하면 상당히 느린 속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래요.
계시록 외에도 전해드려야 할 말씀이 많은데, 제가 목사로서 사역을 감당하면서 언제 또 요한계시록 강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로마서 강해도 164회에 걸쳐 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와 같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의 경우 16장까지 있으니 매주 1장씩만 한다면 4개월 만에 끝낼 수도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쉽게 넘겨 버리기에는 이
로마서에 너무나도 귀한 말씀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강해를 마치기까지 결국 3년 이상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계시록의 경우는 22장까지 있으니 로마서보다 좀 더 길다고 할 수 있지요.
솔직히 언제까지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로마서나 다른 강해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마치는 데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한 구절이나 한 문장, 아니, 한 단어에 담긴 하나님의 뜻까지도 우리가 받게 된다면 그야말로 주님의 은혜가 우리 삶
가운데에 넘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따라서 계시록 강해도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진행해 나아가도록 할 예정이기 때문에 여러분들께서도 잘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는 요한계시록 3장 3절까지 살펴보았기 때문에 순서로 본다면 오늘은 4절 이후의 말씀을 공부할 차례이지요.
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조금 더 살펴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같은 구절을 다시 한 번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은 여러분께 몇 가지 말씀을 먼저 드려볼까 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들으시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 하시겠습니까.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듣다가 혹시 좀 생소하거나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디 끝까지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로 유월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약에는 여러 절기가 있지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 중 하나를 꼽으라면 유월절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약 400년 동안 살면서 심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불쌍히 여기셔서 친히 모세를 보내시고는 그들을 이끌고 나오도록 하셨지요.
그러나 애굽 왕 바로가 그들을 쉽게 놓아줄 리 만무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돈 한 푼 안 들이고 종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귀한 노동력을 거저로 포기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내보내라는 모세의 말을 단칼에 거절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 여러 재앙을 내리시게 되지요.
바로 왕은 재앙이 내리니까, 그 때는 내보내겠다고 했으면서도, 조금 지나면 또 안 내보내겠다고 번복을 해요.
그러자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각 집안에 있는 첫 자식들을 죽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대문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놓으면 그 집은 넘어갈 것이니,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린양을 잡고는 그 피를 대문 앞 인방과 문설주에 발라 놓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자손들 집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지 않은 애굽 사람들 집에서는, 모든
가정에서 첫째 아이들이 죽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애굽 온 나라가 통곡에 휩싸이게 됩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결국 애굽의 바로 왕은 굴복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나가라고 하기에 이릅니다.
이로써 그 오랫동안 남의 나라 땅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인도 하에 드디어 애굽을 탈출하게 되지요.
그래서 유월절, 그러니까 건너뛴다, 뛰어 넘는다는 뜻을 가진 유월절이 유대인들에게 절기가 됩니다.
이 유월절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2장 14절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유월절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키라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또한 예수님께서도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에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를 기념하라고 하신 것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마련한 자리였거든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영원히 대대로 지키라고 하셨고,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도 지키셨기 때문에 우리는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둘째로는 안식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출애굽기 31장 15절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는 마지막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 날은 거룩한 날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를 반드시 지키라고 하셨고, 뿐만 아니라 이를 어기면 반드시 죽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말하자면 목숨을 걸고라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인 것이지요.
안식일에 대해서는 율법 중의 율법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 중에서도 제4계명에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이 안식일에 대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 있어서의 안식일은 토요일,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신 후로는 구약 때의 안식일이 신약에서의 주일 즉 일요일을 지키는 것으로 바뀌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던 것처럼 우리는 주일 즉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이스라엘에 대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백성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3절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아브라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자손에게까지 이어지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7장 6절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 자손들을 만민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며 구원은 곧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통해서 임하게 된다.
자, 지금까지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유월절은 구약에 나오는 절기이지만 구원과 관련되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지켜야 한다.
둘째, 구약에서의 안식일은 지금의 주일이므로 안식일처럼 지켜야 한다.
셋째,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이며 구원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임한다.
여러분, 만약에 어느 날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님이나 아니면 여러분이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이런 주장을 하셨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 하시겠습니까.
사실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인터넷에 찾아보면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개혁주의 복음주의 교회가 의외로 상당수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더 있긴 합니다만 대표적으로 오늘은 이 세 가지 부분에 대해서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유월절을 비롯한 구약의 절기입니다.
우리는 구약에 등장하는 절기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개혁주의 복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각 교회마다 개별적으로 지키는 절기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지키는 절기는 성탄절을 비롯해서 모두가 다 신약상의 절기입니다.
어떤 분은 오순절이 구약상의 절기가 아니냐고 하실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동일한 절기가 구약에도 있을 뿐, 지금 개신교에서
지키는 오순절은 오순절 다락방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고, 사도행전
2장 1절에 의하면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임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개신교에서 기념하는 오순절은 신약에서의 성령강림일을 기준으로 한 절기이기 때문에 이는 구약의 절기가 아니라 엄연한
신약상의 절기입니다.
구약상의 절기에는 유월절이나 오순절을 비롯해서 대표적인 절기가 무교절, 초실절, 나팔절, 대속죄일, 그리고 초막절, 이렇게 해서
일곱 개의 절기가 있습니다.
이는 모두가 다 구약상의 절기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교회나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개신교라고 하면서도 구약에서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제가 일본에 있을 때 흥미로운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서점에서 발견한 것인데, 어떤 대형 서점의 한 코너에 가니까, 비슷비슷한 책들이 상당히 많은 종류가 진열되어
있었어요.
두께는 비슷한데 표지도 다 다르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에 있어서 차이가 많았습니다.
싼 것은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대부터 시작해서 비싼 것은 몇 십만원이나 하는 것들도 있더라구요.
처음에 제가 이걸 보고는 참 신기했습니다.
아니, 책들이 뭐 다를 게 없어요.
두께도 비슷하고 디자인도 다 비슷합니다.
저렴한 책과 비싼 책을 비교해도 가격은 몇 배나 차이가 나는데 인쇄상태나 종이질에 있어서 별반 다를 게 없거든요.
그래도 조금 더 자세히 보니까 차이가 좀 있더라구요.
그게 뭐냐 하면 그 책들이 말하자면 카탈로그입니다.
그러니까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상품들이 소개되어 있는 것이지요.
단순히 무슨 물건만이 아니라 어떤 건 유명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사권이나, 여행 패키지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어요.
아니, 상품들의 가격대가 다르다고 해서 비싼 상품이 실려 있는 카탈로그는 비싸고, 저렴한 상품들이 있는 카탈로그는 쌀 필요가
있어요?
그냥 비싼 걸 살 때에나 싼 걸 살 때나 거기 적혀 있는 금액을 지불하면 될 것인데, 그렇다고 단순히 상품을 소개하고 있는 한낱
카탈로그까지 이렇게 많은 가격차이가 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고민고민 하다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그 서점 직원한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더라구요.
그 분의 설명에 의하면, 이는 보통 선물용이나 답례품으로 사용되는 것인데, 그 가격대의 카탈로그를 사면, 거기에는 그 가격대에
맞는 상품들이 실려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 하나를 골라서, 그 상품 번호를 거기에 첨부되어 있는 엽서에 적어서 보내면 그 상품이
우송되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만원짜리 카탈로그 책에는 그 금액에 해당되는 상품들만 있는 것이요, 몇 십만원짜리 카탈로그에는 그만한 가격대의 상품들이
실려 있어서, 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하나만 골라서 신청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주는 사람은 가격대만 구체적으로 설정하면 되고, 받는 사람은 그 카탈로그 책 안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좋은 상품이 있는 카탈로그 책이라고 해도 그 책을 그냥 가지고만 있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사실 그 책 자체에는 무슨 몇 만원이다 몇 십만원이다 하는 값어치가 없어요.
그 책의 값어치는 거기에 있는 상품을 주문해서 받는 것에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도 그냥 그 책만 바라보며 좋아하고만 있다고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짓이요, 그리고 그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율법에 대해서 어떻게 정리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0장 1절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 말하자면 좋은 소식의 그림자일 뿐이고 참 형상이 아닙니다.
좋은 일, 좋은 소식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소식이 영어로는 good news라고 하잖아요.
이 뜻은, 그렇지요.
바로 복음, 즉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뜻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유월절을 지키셨는데, 그렇다면 신약에서도 유월절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
어떤 사람이 이렇게 주장을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어? 그러네? 하시겠어요?
그렇게 따지자면 누가복음 2장 21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신 지 팔일 만에 율법대로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자,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그것은 바로 구약과 신약의 그 경계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신약은 어디서부터 시작합니까.
예, 이 질문에 “마태복음이요!”라고 하는 목소리가 어디서부터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만, 예, 신약성경은 마태복음부터 시작하지요.
또 어떤 분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순간, 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부터 신약이 시작한다고 하실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신앙적으로 보았을 때 구약과 신약, 더 구체적으로 구분한다면 율법과 복음의 그 경계는, 다름아닌 예수님의 부활 그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고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율법의 세계였습니다.
절기도 지켜야 하고 애초에는 613개였던 것을 종교지도자들이 2134개로 늘려 놓은 율법도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으로, 그것도 제사장을 통해서만 나아갈 수가 있었어요.
하지만 마태복음 27장 51절, 마가복음 15장 38절, 그리고 누가복음 23장 45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그 동안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던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것도 성경 기록에 의하면 위에서부터 찢어졌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는 우연히 어쩌다가 찢어진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희생을 받으시고 친히 휘장을 찢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지금은 율법의 시대가 아닙니다.
복음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거나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선물로 받은 카탈로그 책을 종이책 그대로
간직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여러분, 복음의 시대는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열렸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카탈로그 책은 만원짜리도 있고 십만원짜리도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그렇다면 예수님의 보혈은 그 값어치가 어느
정도 됩니까.
100억이요? 1000억이요?
여러분, 예수님은 단순히 한 인간 한 피조물이 아니세요.
이 세상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보혈을 그깟 돈 몇 푼으로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
전세계, 아니, 전 우주의 모든 금은보화를 합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피 한 방울보다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보혈을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흘려 주셨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는 놀라운 축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자가로 보여주신 사랑과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축복을 내가 받아야 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구원과 축복을 받지 않고, 그저 카탈로그 안에 있는 사진, 신약의 그림자만 찍혀 있는 사진들만 보고 좋아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림의 떡은 아무리 보고 있어봤자 나를 배부르게 해주지 못합니다.
배가 고플 때 그림의 떡을 아무리 본다 하더라도 그대로라면 결국 굶어 죽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유월절도 지냈습니다.
할례도 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제자들이 모여서 유월절을 지냈다는 기록이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히브리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7절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부활 이전에 절기마다 모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제물을 드림으로써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완전해요.
그렇기 때문에 매번 드려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희생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반복해서 불완전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안식일에 집착을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몇몇 이단 사이비 집단에서는 주일예배가 아니라 안식일을 지킨다면서 토요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일반 개혁주의 복음주의 교회를 향해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가짜 교회라고 비판을 해요.
하지만 자기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진정한 교회라고 선전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성경을 조금 들여다보면 이와 같은 주장이 얼마나 어설픈지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에 안식일에는 그야말로 안식하는 날이에요.
그래서 당시에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예컨대 거기에는 이동거리에 대한 제한도 있었습니다.
이 거리를 당시에는 2000규빗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이는 1규빗이 45센티정도라고 하니까 2000규빗은 대략 900미터에서
1킬로 정도 거리입니다.
그러니까 율법대로라고 하면 안식일에는 1킬로 이상 떨어져 있는 거리는 가면 안돼요.
그러면 안식일을 지킨다면서 토요일에 예배 드린다는 그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는 다 자기 집에서 1킬로 이내에 있습니까.
아니겠지요.
뿐만 아니라 걸어다니기만 하겠어요?
자동차나 전철 같은 교통수단도 쓰겠지요.
그 사람들 말에 따른다면 이미 거기서 율법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거기 사람들은 지금도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나요? 양이나 염소 등을 태우면서 속죄제나 속건제를 드립니까?
요즘 한국에서 그랬다가는 쓸데없이 불장난 한다고 자자체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뭐라고 기록합니까.
야고보서 2장 10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그 많은 율법 중 하나라도 어기면 모두를 어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안식일 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무슨 자기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 물론 짐작은 합니다.
다 여기에도 자기들을 합리화하는 논리들을 만들어 놨겠지요.
하지만 성경에 보시면 과거에 그랬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렇죠.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렵고 까다로운 율법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 놓고는 그것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했던 것이지요.
그와 같은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칭찬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1장 46절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성경말씀을 자기들 멋대로 짜깁기해서 지키기도 힘든 규정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일반 백성들은 괴롭히면서도 자신들은 안 지켜도
괜찮다면서 멋대로 살아요.
언론보도를 보면 지금의 이단 사이비 교주들도 똑같은 꼴 아니겠습니까.
신도들에게는 엄격한 규율을 강요하면서 교주인 자기 자신은 온갖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이는 제가 실제로 들은 말입니다.
예전에 어느 일본인 신학생한테 들은 말인데, 이 사람은 그렇다고 이단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정통 보수 신학교에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래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이 지금도 살아있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축복이냐 하면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2장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축복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하면서, 지금도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사람들,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 잘해주면 우리도 복을
받는다는 거예요.
이 말을 하면서 무슨 대단한 천국 비밀을 말해주는 듯한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여러분, 여전히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입니까.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저의 말씀을 듣고 계신 대다수 한국분들은 저를 포함해서 모두가 구원받지 못하는 이방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뭐라고 기록합니까.
갈라디아서 3장 7절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29절
“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여러분, 구원은 인간적인 혈통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기 지구 반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나야 선택 받은 민족이고, 그렇지 못한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육에 있는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영적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구원이 약속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어디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이 우리 이웃에 있으면 잘 해주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 뿐만이 아니라, 미국 사람, 일본 사람, 이란 사람, 러시아 사람, 우크라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우리
이웃이라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꼭 외국사람이 아니라, 자, 우리 손을 가슴에 대 볼까요.
지금 내 마음속에 아주 미워하고 있는 사람,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괜히 착한 척 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내가 미워하고 있는 사람,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나누어 주기를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우리의 축복이 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요한계시록 3장 2절~3절
“2.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똑 같은 말이 두 번 등장합니다.
그게 무슨 말일까요.
예, 바로 ‘일깨다’라는 말씀입니다.
2절에서는 ‘일깨어’, 그리고 3절에서는 ‘일깨지 아니하면’이라고 나오죠.
이 단어는 ‘일어나라’, 또는 ‘각성하라’ 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어떤 번역본에 보니까 특별히 3절 번역에서 참 와 닿는
말이 있었어요.
현대인의 성경판 요한계시록 3장 3절
“그러니 네가 받은 것과 들은 것을 기억에 되살려 그것을 지키고 회개하라. 만일 네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가겠다.
너는 언제 내가 너에게 갈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주님께서 도둑같이 오셔서 심판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9장 17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복음이라는 새 포도주를 율법이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넣게 되면 모두 터져 쏟아지게 됩니다.
엉망이 되는 것이지요.
복음은 복음이라고 하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나마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율법 속에 잠들면서 복음을 담아야 할 새 부대를 터뜨리며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실 작정이십니까.
이제 우리는 새롭게 복음으로 다시 깨어나, 주님 앞에 온전한 믿음과 말씀과 행함을 드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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