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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26번째 시간으로서 “온전히 드려야 할 믿음 말씀 행함”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도 일곱 교회 중 다섯 번째 교회인 사데 교회로 보내지는 편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번 본문 말씀을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검토해 보도록 합니다.
우선 2절을 두 부분, 그리고 나머지 3절을 역시 두 부분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아요.
첫번째는 2절 전반부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두번째는 2절 후반부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세번째는 3절 전반부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3절 후반부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자, 이렇게 나누어서 살펴보기로 하겠는데 우선 첫번째 부분부터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절 전반부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이 말씀은 오늘 살펴볼 내용 중에서 전체적인 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조금 풀어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다고 하겠지요.
지난 주에는 주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기를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여기서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컨대 나무가 지금 말라가고 있는데 대부분 다 죽었어요.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죽어가는 나무가 모두 썩어 뽑혀 버리기 전에 일깨어 굳건하게 하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오늘 말씀의 주제는 왜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말씀,
그리고 다 죽어 멸망하기 전에, 일깨어 지금 남아 있는 것을 굳건하게 하라는 말씀이고,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며, 만약 그대로 두게 된다면 어떠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번째는 요한계시록 3장 2절 후반부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앞에서 사데 교회 사람들의 온전한 행위, 올바른 행위를 찾지 못했다고 말씀하세요.
‘행위’라고 하면 누구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하자면 ‘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말씀인데, 이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다음 구절에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로마서 3장 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이처럼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우리가 의로운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의로 여겨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멈추어 버리면 안 됩니다.
이 또한 대표적으로 야고보서에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야고보서 2장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처럼 성경은 마치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다시 말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믿음의 행위에 대해서 고린도전서에서는 바울이 ‘달음질’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얼마 전 동계올림픽이 끝났습니다만, 꼭 올림픽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세계적인 대회에 출전한다는
것은 그것 만으로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구체적인 기준이나 훈련과정 같은 것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왔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국가대표로 뽑혀서 올림픽에 출전했어요.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인가요?
아니에요.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 만이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경기가 치러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거기서도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는, 정작 올림픽에서는 설렁설렁 경기를 했다고 해보세요.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국가대표라고 해도 국민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겠습니까.
학교도 그렇잖아요.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졸업이 가능합니까.
거기서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학점을 따야지만 졸업할 수 있어요.
취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어가기 힘든 대기업에 열심히 준비해서 들어갔다고 해보세요.
참 기쁜 일이겠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우선은 취업이 가장 큰 목표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남들이 다 부러워할 정도로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고 하면 집안의 경사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으로 인생의 목표를 다 이룬 것인가요?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어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지요.
아무리 좋은 회사라고 하더라도 거기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놀고 먹으라고 뽑은 것이 아니잖아요.
월급도 주고 여러가지 복지혜택을 주는 대신 그 회사를 위해서 성과를 내야 합니다.
신앙도 예외가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그렇다면 이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요?
가만히 있는 믿음은 어떤 것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영혼 없는 몸처럼 죽은 믿음이라고 하시잖아요.
우리는 성경 말씀을 정확하게 봐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 만이 아니라 ‘행함’이라는 말씀을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6장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갚으신다고 하십니까.
예.
그렇죠.
행한 대로 갚는다고 말씀하세요.
이 말씀은 계속해서 나옵니다.
로마서 2장 6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요한계시록 22장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성경에서는 우리가 믿은 대로 갚아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자,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떻습니까.
조금 길지만 읽어드릴게요.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여기에 보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음이래요.
아니, 그러면 도대체 믿음이 중요하다는 거야.
아니면 행위가 중요하다는 거야 하면서 앞뒤가 안 맞는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무오, 즉 성경에는 오류나 모순이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믿음과 행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요.
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신다는 것은 우리를 지금 당장 구원해 주셔서 천국으로 들여보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아직은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신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세상에서 주님이 허락해주신 생을 다 마친 다음에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주셨다는 뜻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세상에는 이 자격마저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훌륭한 율법적인 행위를 해서 그 대가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진
크나큰 선물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앞서 설명 드린 예로 다시 말씀 드린다면, 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무엇보다 올림픽에 출전해야 하잖아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면 금메달을 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그만한 실력이 없는데도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를 얻었어요.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데 좋은 대학, 좋은 대기업에 취직할 수가 있었어요.
그것이 말하자면 믿음 안에 있어서의 은혜,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 받을 자격을 얻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들어간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했잖아요.
내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상을 받았다고 한다면 이제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온전한 행함을 주님께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사데 교회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들은 어땠다는 것입니까.
요한계시록 3장 2절 후반부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이게 무슨 말씀이에요? 예, 그렇죠.
그렇게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자격이 주어졌는데도, 하나님 앞에 드려질 만한 온전한 행위, 온전한 행함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에요.
자기 실력으로는 도저히 넘볼 수도 없는 회사에 들여 보내줬는데, 일할 생각은 안 하고 맨날 결근하고 지각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놀러 다닐 생각만
해요.
뿐만 아니라 몇 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계약서 하나, 써먹을 만한 기안서 하나 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자, 신앙적으로 볼 때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를 해결해야 되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총체적 난국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예, 그 방법이 바로 세번째 부분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세번째는 요한계시록 3장 3절 전반부였지요?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주님께서는 이 살아있다는 것은 허울 뿐이고 그 속은 거의 죽어 있는 상태, 하나님께 바쳐질 만한 행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무엇 하나 없는
상태인 사데 교회가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간결하고도 완벽하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평소에 항상 강조하고 있는 ‘믿음’과 ‘말씀’과 ‘행함’의 법칙입니다.
우리에게 맨 처음에 믿음이 심어졌습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믿음이 심어지기 위해서는 성경을 모두 알아야 합니까? 신학교를 나와야 해요? 아니면 적어도 집사 직분이라도 받아야 믿음이 심어진 것입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이 언제 믿었습니까.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당시 그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늘의 별을 보라고 하시면서 소망을 주셨을 때 이 말씀을 받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그가 예수님을 따랐을 때 모세오경을 알아봤자 얼마나 알았겠으며, 메시아나 선지자에 대한 지식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음에도 허탕을 쳤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게 되었잖아요.
이를 보고 그는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는 언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셨습니까.
대표적인 경우라면 처음 기도 응답을 받았을 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는 정말 안 될 줄 알았는데,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예수님께 기도를 하니까 응답을 받았어.
내 병이 나았어.
문제가 해결 되었어.
아, 정말 예수님은 계시는구나.
할렐루야!
사실 그 때부터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처음 믿기 시작했을 때에는 대단한 욕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저 매주 교회에 다니면서 예배 드리고 교회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마냥 즐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경쟁을 합니다.
시기를 합니다.
자존심을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연차도 쌓이고 설교도 많이 들었으니 왠지 좀 아는 척을 해도 주위에서 다 받아주고 대우를 해줍니다.
웬만한 직분도 받고 목에 힘도 들어가요.
이렇게 되니 이제 첫 믿음이 사라지고 교만이 싹트게 됩니다.
목사님이나 교역자들도 함부로 못 건드려요.
그러니까 완전히 교회에서 아주 안하무인이에요.
뭐, 더 이상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이런 상황까지 가면 그야말로 언제 문제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겠지요.
여러분, 우리는 처음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믿음을 받았는지를 기억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예, 그것은 바로 성경 말씀인 것이지요.
특히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이 부분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믿음이 좋은 사람들의 척도는 아마도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이요, 모든 문제는 기도를 하면 해결이 되고, 문제가 해결 안 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기도가
부족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무조건, 기도 많이, 방언 많이, 은사 많이, 봉사 많이, 금식 많이, 그리고 헌금 많이, 한편으로 성경은 뭐, 시간이 나면.
여러분, 이렇게 되면 완전히 주객전도입니다.
가장 중요한 성경이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 있잖아요.
이러면 어떤 문제가 생기냐 하면 자신이 성경도 많이 읽지 않았으면서 단지 설교나 기독교서적들만 좀 읽었다고 해서, 그리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단편적인 지식들만 가지고 자기가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위험해요.
실제로는 많이 알지 못하는데도 그게 별로 대단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성경에 대해서 조금 말문이 막히면 다 은혜로 받아들이면 된대요.
아니, 성경은 몰라도 되고, 다 은혜로 받아 들이면 된다고 한다면, 그러면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들이나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그냥 은혜로 받아들이면 되지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성경말씀을 연구하겠습니까.
일이 이 지경이 되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냐 하면요 참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전도지를 돌리면서 발견한 어떤 전단지인데, 표지에는 “천국이 가까왔다.
재림예수를 믿으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 사진이 있는데 이 사람이 재림예수래요.
그리고 이 사람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읽어보니까 이 사람이 지금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 교도소에서 돌아가셨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재림예수가 와서 다시 천국으로 갔으니까 이제 천년왕국이 건설될 거라는데 그걸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용을 보면 마치 자기들의 이런 주장이 성경기록에 입각한 것이라고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에 성경구절이 적혀 있어요.
예수님이 다시 오셨다가 또 돌아가신다는 구절이 성경에 있습니까.
아니면 이제 세 번째로 오세요? 초림, 그리고 재림 그러면 이제 그 다음은 삼림입니까.
그런데 이런 걸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마도 자기들은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죠?
여러분, 우리는 성경이 중요하다고 말은 해요.
그러면서 무거운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리고 설교시간 때마다 형형색색 줄을 긋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솔직히 도대체 줄은 왜 긋는지, 하다못해 교회 비치용 성경에도 자기 것도 아닌 성경책에 다시 보지도 못할 거면서 왜 줄을 긋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열심히 줄을 그으면 뭐합니까.
머리속에는 전혀 말씀이 들어와 있지 않은 걸요.
3장 3절 전반부 말씀을 한 번 더 볼까요?
요한계시록 3장 3절 전반부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우리 마음 속에 믿음이 어떻게 심어졌는지, 다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설교나 기독교서적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말합니다.
이 성경말씀에 어떻게 적혀 있는지를 생각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어요?
그렇죠.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려면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 회개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네 번째 부분이죠?
요한계시록 3장 3절 후반부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도둑 같이, 다시 말해서 아무도 예상치 못할 때에 오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러 오십니까.
도둑이 우리에게 무슨 좋은 선물이라도 주기 위해 오나요? 아닙니다.
이는 바로 심판을 하러 오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지요.
주님은 도둑같이 오십니다.
그러면 왜 오시는 것을 예상하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는 괜찮을 줄 알았거든요.
구원 받을 줄 알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 정도 된다면 충분히 구원 받고도 남을 줄 알았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어디 있었습니까.
이는 바로 노아 시대에 홍수가 임하기 전,
소돔과 고모라에 불과 유황이 쏟아지기 전의 사람들이 바로 그랬고,
계시록 당시에 사데 교회에,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요?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차고 넘친다는 것이지요.
누가복음 17장 27절~29절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방심하면 안 됩니다.
하늘에서 심판의 비가 내리기 전에,
방주의 문이 닫히기 전에,
불과 유황이 내리기 전에,
그리고 주님이 도둑같이 오시기 전에,
우리는 우리에게 믿음이 어떻게 심어졌고 주님이 성경을 통해 어떻게 말씀해 주셨는지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회개하여 주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남겨진 우리의 삶 속에서 온전한 믿음과 말씀과 행함을 주님 앞에 드림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영광의 그 날,
구원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을 모두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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