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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24번째 시간으로서 “천국에서 주어질 놀라운 사명”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두아디라 교회로 보내지는 편지를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자, 여러분께서는 예수님을 잘 믿으면,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생을 이 세상에서 마감한 다음에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될 줄
믿으시나요?
예, 꼭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병이 낫고 삶이 풍족해지고, 그리고 그 외에 내 기도가 응답 받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만,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는데 마지막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잖아요.
자, 그렇다면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여러분께서는 장차 가게 될 천국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는 정말 잘 알고 계십니까.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어떤 분을 만났는데, 이 분은 가족과 함께 이민을 오신 분이십니다.
이 분은 당시 미국에서 친척이 하고 있는 한국마켓에서 일하고 계셨는데, 참 열심히 사시는 분이세요.
그런데 하루는 이 분이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해요.
자기는 서울에서 참 각박하게 살았는데, 미국에 오면 한국에서 살 때보다 좀더 문화생활도 즐기면서 여유롭게 살 줄 아셨대요.
하지만 정작 미국에 와보니 그게 아니더라는 거예요.
이건 정말 밤낮없이 일하고 주말에도 쉴 새가 없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와서 보니까 오히려 미국이 마음대로 왔다갔다 거리지도 못하고 말도 안 통하고, 이건 한국보다 훨씬 더 넓은 나라에 왔는데도
오히려 더 답답하고 힘들다고 토로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을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고 계세요?
만약에 여러분께서 마음대로 생각하고 계셨다가 나중에 천국에 가셨을 때 실망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이쿠, 내가 생각했던 천국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기를 쓰고 오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하고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시려고요.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더구나 믿음이 있다고 하는 분들조차도 천국에 대해서 모르고 계신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어떤 분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구름 위를 날고 있을 때, 창문 밖 풍경을 보고 아, 천국은 정말 저런 모습이겠구나 하고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인터넷으로 ‘천국’이라고 쳐보면 신기하게도 그런 모습들이 많이 나와요.
그건 아마도 사람들 생각에 아, 천국이라면 저런 곳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좋습니다.
제가 아직 천국에 가본적은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고는 말씀 드릴 수 없겠지요.
계시록 후반에 가면 천국에 대한 묘사도 있습니다만, 일단 천국은 뭐 그런 곳이라고 쳐요.
그러면 그와 같은 천국에 가면 무엇을 하시게 됩니까.
그저 찬양 부르고 맛있는 것 먹고 쉬고 그래요?
그걸로 정말 만족하십니까.
예전에 어떤 분께 그렇게 여쭤보니까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럼 더 이상 뭐가 있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러면 더 나아가서 우리더러 그저 찬양 부르고 맛있는 것 먹고 쉬고 자고……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나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렇지가 않아요.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사명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본문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자, 이기는 자, 그리고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 어떤 권세를 주신다고 되어 있어요?
그저 편안하게 놀고 먹고 자고 쉬는 권세를 주신대요?
요한계시록 2장 26절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렇습니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은 여기만 기록된 것이 아니에요.
디모데후서 2장 11절~12절
“11.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여기서도 참으면 즉 끝까지 인내하며 이기는 자는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된다고 기록합니다.
요한계시록 5장 10절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이렇게 ‘왕 노릇’이라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천국을 모릅니다.
그저 천국에 가면, 무슨 나이 들어 요양원에서 여생을 즐기는 것처럼, 그저 먹고 놀고 쉬고 자고 그러는 줄만 알아요.
그 이유가 뭐예요? 예, 그렇죠.
성경을 안 읽어서 그런 것입니다.
정말 참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아요.
이는 정말 좀 부끄러운 말입니다만, 목사님들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도 성경을 많이 모르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이는 좀 여담입니다만, 얼마 전에 그런 일이있어요.
아직 교회를 개척하기 전이기 때문에 요즘은 집근처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립니다.
하루는 찬양을 드리는데 좀 가사가 흥미롭더라고요.
여러분도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새찬송가 211장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 받아서”
여러분은 이 가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복음서에 보면 주님께 향유를 드린 여인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각각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그 여인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곳은 요한복음 11장 2절에서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라고 되어 있을 뿐, 다른 곳에는 이름들이
모호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디에도 향유를 드린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되어 있는 기록은 없다는 점이에요.
이 찬양은 공교롭게도 미국 목사님이 작사작곡 하신 것인데, 그런데 영어 원문을 보더라도 ‘막달라 마리아’라고 되어 있어요.
이 찬양이 나온 것은 1889년이라고 되어 있으니 지금이 2026년이니까 130년 이상 불려왔다고 할 수 있겠는데, 성경에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은 것을 130년 이상 그저 부르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저도 이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으니 할 말은 없습니다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여전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이제 이런 것도 있습니다.
이건 찬양은 아닙니다만, 막달라 마리아 말이 나와서인데,
막달라 마리아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느냐 하면,
창녀였다고 하는 그와 같은 말도 있습니다만,
역시 그것도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옛날에 그레고리우스 1세인가가 주장을 했던 하나의 주장에 불과해요.
그러니까 막달라 마리아의 직업에 대해서도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뭐라고 나와 있어요?
예, 일곱 귀신이 들려있던 여인, 그러나 주님께서 구원해 주신 그와 같은 여인,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덤에 있을 때, 거기에 달려갔던 여인 중 하나가 역시 막달라 마리아,
아주 끝까지 주님을 섬겼던 그와 같은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아무튼 성경에서는 반복해서 장차 우리가 왕 노릇 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도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는 사람들 보면 어떻습니까.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사람 있어요?
아니에요.
최소한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본다면 그런 사람들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 위치에 오르게 되면 상당한 특혜를 누리고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사람들 보면 어느 나라나 기를 쓰고 그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대통령이라고 해도 지금 현재 한국에서는 길어봐야 5년까지밖에 할 수 없어요.
일본의 경우 총리는 임기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만, 역사적으로 본다면 어렵게 그 자리에 올랐건만 1년도 못 채우고 내려온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20장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2장 5절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예, 20장 6절에서는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고 되어 있고, 조금 뒤인 22장 5절에서는 세세토록 즉
영원토록 왕 노릇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한 쪽에서는 천 년이라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세세토록이라고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차차 공부하면서 나중에 세부적으로
살펴보게 되겠습니다만, 아무튼 최소한 천 년 동안 왕 노릇을 하게 된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면 또 어떤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에이,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겠어.
혹시 그런 생각 하셨습니까.
자, 성경을 보십시오.
창세기에서는 나라나 국적도 없이 그저 가나안 땅에 우거하던 야곱의 아들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밉보여서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당시 그의 나이 고작 열 일곱이었어요.
어디 그 뿐인가요.
그것도 모자라서 아무런 잘못없이 누명까지 써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그의 인생은 끝난 것 아니겠습니까.
노예로 팔려와서, 누명이라고는 하지만 죄인이 되어서 감옥까지 갔습니다.
이것은 인생이 끝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죠.
당시 세계 최강국인 애굽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무엘상 9장에 의하면 사울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도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이고, 그 중에서도 미약한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높이시자 그는 아무런 공로 없이 이스라엘 초대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사무엘상 16장에 의하면 선지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사울 다음으로 왕이 될 인물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서 이새한테로
보내심을 받습니다.
그러고는 이새에게 이르기를 너희 아들을 다 불러 모으라고 했는데, 그 아들들 중에서 하나님이 선택한 인물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사무엘이 여기 있는 게 전부냐고 묻자 아버지 이새가 말하기를 막내가 하나 있는데 지금 양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를 어서 불러오라고 해요.
그렇게 해서 온 인물이 누구입니까.
예, 다윗이었던 것이지요.
장남 차남도 아닌, 그저 팔 형제 중에서 막내아들이었던 다윗은 집안에서 조차도 대접을 못 받았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더니 그는 마침내 왕이 되어서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 그렇죠.
배경이나 상황이 요셉이나 사울 그리고 다윗 정도 밖에 안 되더라도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다면 누군들
왕이 될 수 없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자신감을 가집시다.
장차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만국을 다스릴 왕으로 높여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다스리게 된다고 하십니까.
요한계시록 2장 27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이 말씀은 시편 2편에도 등장합니다.
시편 2편 8절~9절
“8.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나라들을 유업으로 주실 것이며 다스리게 된다는 말씀을 해 주시는데,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고
질그릇 같이 부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야말로 절대권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얼마 전 살펴보았던 앞구절을 다시 한번 보기를 원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앞서 저는 그 눈이 불꽃 같다는 말씀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설명 드렸지요?
오늘은 ‘발이 빛난 주석과도 같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뜻도 알게 됩니다.
장차 우리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철장으로 다스리고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 같이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여기서 철장이라고 하는 것은 쇠로 된 막대기입니다.
그리고 질그릇이라고 하면 어떤 그릇입니까.
질그릇은 그야말로 흙으로 만든 그릇인데, 이런 그릇은 어디에 좀 세게 부딪히기만 해도 금이 가요.
그런데 이를 쇠막대기로 때리고 거기다가 주석으로 된 발로 밟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는 그야말로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부서지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은 장면은 일찍이 다니엘서에도 등장합니다.
다니엘 2장 34절~35절
“34.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이는 느부갓네살 왕이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해서 꿈을 꾸고 이를 다니엘이 풀어주는 장면인데, 그 때 꿈의 마지막 내용이 바로
계시록에 등장하는 말씀과 일치하지 않습니까.
더 나아가 18절에서는 발신자의 권위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아버지께 받은 것, 다시 말해서
철저하게 심판하는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를 풀어서 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시 한 번 본문을 보실까요?
요한계시록 2장 26절~27절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이는 주님과 함께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만국을 철저하게 심판하고 다스리는 놀라운 권세를 주실 것인데, 그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님이 받으신 것이고, 그 권세를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우리에게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28절을 보시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8절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여기서 새벽 별을 주시겠다고 하는데 새벽 별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6절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이 말씀에서 새벽 별은 예수님 자신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주님께 순종하고 끝까지 인내함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자에게는 주님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욕심이 없거나 겸손해서가 아니에요.
골로새서 2장 2절~3절
“2.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예, 그리스도 안에는 무엇이 있대요?
그렇습니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얻는다는 것은 이를 모두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인데, 이보다 더 큰 욕심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겸손해서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심이 많고 원하는 것이 크기 때문에, 다름 아닌 예수님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순종하기 위해 힘 써야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구절 보시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9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일찍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지요.
누가복음 10장 23절~24절
“23.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다윗 왕, 그 외에 내로라할 만한 선지자라 하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는 못했잖아요.
그런데 당시 사도들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질 수도
있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이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당시 사도들이 부러우신가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우리는 당시 사도들도 알지 못했던 더욱 크고 놀라운 비밀들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계시록 내용은 아무리 사도들이었다고 하더라도 당시에는 알 수가 없었던 말씀이라고 하겠지요.
주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 마지막 일까지도 모두를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 그렇지요.
이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고 인내하며 마침내 주님과 함께 승리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길은 단순한 여정이 아닙니다.
마치 요셉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며, 그리고 감옥에서는 애굽의 고위관료들을 통해서 애굽의 언어와 문화 등을 배우고 익힘으로
말미암아, 장차 애굽을 통치하기 위해 많은 것을 습득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마치 다윗이 사울의 눈을 피해 약 10년 동안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쟁과 리더십을 배우고,
그리고 무엇보다 인내와 순종을 배우면서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리는 준비과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장차 주님과 함께 왕으로서 만국을 다스리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쳐온다고 해도 능히 견뎌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긴 말을 바울은 단 한 문장으로 정리를 했어요.
로마서 8장 18절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조금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생각한다면 구원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머지않아 부어 주실 넘치는 축복과 은혜, 그리고 진정한 구원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마침내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왕으로서 만국을 다스리는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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