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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23번째
시간으로서 “더 늦기 전에”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주도 계속해서 여러분과 함께 두아디라
교회로 보내지는 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회개하지 않는 이단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서 가급적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들에 대해서 잘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이래서 잘못됐고 저기는 저래서 문제가 있고 그러면서 비판만 하게 되면, 마치 무슨 싸구려 정치인이나 하는
것처럼 자칫하면 시종일관 비판으로 시작해서 비판으로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잘못하면 그렇게
비쳐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에 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만, 가급적 다른 종교는
물론이지만 이단 사이비 집단이라 하더라도 여기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면서 철저하게 복음주의 개혁주의에 입각한 성경말씀을 전하는
데에만 집중을 하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특별히 요한계시록에 대한 강해를 하게 되면 언급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해요.
아니, 한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무슨 종교를 믿든지 이를 존중해야지 무조건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냐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그 말은 맞는 말씀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무슨 종교든지 믿어도 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종교를 갖든지 비난을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존중되어야 하고, 종교행위 역시 존중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겠지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아무리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님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는 확신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종교행위를 방해하거나 하면 이는 곤란합니다.
또한 예전에 보면 꼭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다른 종교시설에 가서는 꼭 십자가 같은 낙서를 하고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건 올바른
행위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그렇다고 그 종교에 있어서의 가르침이 옳거나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여러분,
만약에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적입니까? 물리쳐야 할 대상이에요?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도대상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지요.
전도대상인 사람들을 물리친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직 복음을 모르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과 같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모두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할 때에 진정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
보아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49절~50절 “49.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을 뿐만 아니라
마귀를 내쫓기도 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기도 하셨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이 어디서 보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있는 것이에요.
그 사람은 자신들과 함께 다니는 사람도 아니요, 아마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요한은 그 사람을 보고 별로 마음이 들지 않았겠지요.
자기가
뭔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를 금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좀 의외의 반응을 하세요.
잘했다고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를 금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지금 우리 시대에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요.
누군가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는 성경공부를 해요. 그 사람은 목사도 아니에요.
그 사람은 신학교도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많이 읽었는지 말씀을 잘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기존 교회에서는 이 사람이 하는 일을 막아야 합니까.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도 교회에서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을 모두
신학교 출신 교역자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정식으로 안수 받은 목사님이 계신 교회에서 함께 모여 섬기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만, 주위에 교회가 없거나, 아니면 여러 이유로 그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와 같이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 성경을 공부하는 자체만 본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목사님이 인도하는
교회라고 해도 거기서 성경을 왜곡하면서 가르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똑같은 성경을 사용한다고 하면서도 그 해석을
완전히 다르게 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복음주의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교회에서는 재림이 이미 이루어졌고, 그 재림한 예수님이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고 해보세요.
그렇다면 이를 기존 교회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까 이를
반대하면 안 되는 것인가요?
만약에 그 사람들이 정말 그야말로 다른 종교라면, 단순한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전도대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자신들이 기독교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고 성경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믿는다고 하면서 그와 같은 엉터리 주장을 한다는 것은, 기존 교회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 10장 8절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아직 주님께시 오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먼저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이미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절도요 강도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강도가 하는 짓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
하나,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빼앗아가는 일입니다.
그들은 선한 양들을 유혹해서 돈과 재산을 빼앗습니다.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과 가족과 그리고 인생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고는 그것들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일들을 어찌 가만히 두고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와 같은 일들을 분별해 내기 위해서는 성경을 깊이 알아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주장을 여러분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사함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자,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우리의 죄는 씻어졌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사실 듣고 보면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회개는 죄인이나 하는 것이잖아요.
죄를 지었으니까 회개를 하는 것인데, 이미 모든 죄가 사해지고 구원을 받았다면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이제부터는 기쁨으로
감사하면 되는 것이요,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자, 이런 주장에 대해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서 자신 있게 반박하실 수 있으십니까.
우리는
여기서 ‘사이비’라고 하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까요?
사이비는 한자어로서 ‘사’는 ‘닮을 사’, ‘이’는
‘말 이을 이’, 그리고 ‘비’는 ‘아닐 비’입니다. 이를 그대로 해석을 하게 되면 ‘닮았지만 아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에요. 처음 대부분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결정적인 한 끗이 다른 것이지요.
만약에 정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이제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인 사도행전 이후에는
회개에 대한 기록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다른 것 다 차치하고라도 계시록에
나와 있는 권면의 말씀인 오늘 구절을 보세요.
요한계시록 2장 22절~23절 “22.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았을 때에 주님께서는 무서운 심판을 내리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마태복음 23장 1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잘못된 가르침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까지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지금 이렇게 꾸짖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같이 잘못된 가르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막아 서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지요.
자,
먼저 22절부터 보실까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것이고,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약에 그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 가운데 던져진다고 하세요.
여기서 ‘그’라고 하는 인칭대명사가 좀 많이
나와서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에, 제가 원어성경을 바탕으로 해서 말씀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여자 이세벨을 침상에 던질 것이고, 또 그 이세벨과 간음하는 자들도 그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여기서 침상에 던지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단순히 잠을 자게 하겠다는 말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볼지어다’로 시작하는 이 22절과 23절은 심판에 대한 내용인데 단순히 잠을
재우겠다는 말씀을 심판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신학자들은 침상에 던지겠다는 말씀을 병상에 던지겠다, 즉
질병으로 앓아 눕게 만들겠다는 말씀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여자 이세벨과 간음한
자들도 지금까지 저질러왔던 그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간음’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이 죄악의 주범이 여자이기 때문에 육체적인 간음을 연상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는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본다면 육체적인 간음 만이 아니라 영적인 간음에 대한 지적도 많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간음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 하면 바로 우상숭배이지요.
그런데 구약에 보시면 영적인 간음이라고 할 수 있는 우상숭배를
하는 과정에서 육체적인 간음도 함께 이루어지기도 했다고 하니, 이 구분도 그리 큰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구절을 자세히 보시면 흥미롭지 않습니까.
지난 시간에 제가 뭐라고 말씀 드렸어요.
이단들
특히 이단 사이비 교주들은 절대로 회개하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여기서도 보시면 이세벨이 교주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에 대한 회개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세요.
단지 그와 더불어 간음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직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만 회개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들도 역시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큰 환난에 던져진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다음으로 23절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3절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여기서도 인칭대명사 때문에 좀 헷갈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겠다고 하셨는데, 그의 자녀가 이세벨의 자녀인지 아니면 이세벨과
우상숭배를 한 사람들의 자녀인지 모호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것도 원어를 살펴보았더니 ‘그의’라고 하는 부분에
‘아우테스’라는 말이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녀의’라는 뜻의 여성 소유격이거든요.
그러니까 ‘그의 자녀’라는 말씀은 자칭 선지자인 여자 이세벨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준엄한 심판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겠는데, 그렇다면 왜 주님은 굳이 이와 같은 심판의 예언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다음
문장에 나와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자, 성경에는 많은 예언들이 등장합니다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세벨이 병상에 눕게 되고 그의 자녀들이 사망하게 될 것이며, 그녀와 더불어 행음하고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 큰 환난을 당하게
될 텐데, 이는 어쩌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분명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예언을
하셨다고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시게 되면 자연스럽게 18절 말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여기서 ‘그 눈이 불꽃 같고’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뜻이 바로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24절을 보시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4절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여기서 ‘이 교훈’이라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를 두고
주님은 분명히 ‘사탄’이라고 말씀하세요.
‘사탄의 깊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도 견해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문맥상으로 볼 때에 주님의 가르침을 버리고 완전히 우상으로 돌아선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해서 거짓 선지자 이세벨이 주장하는 교리에 깊이 빠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내가 다른 것은 바라지 않는다. 어서 그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에서 빠져 나오라, 그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주님은 강권하고 계신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25절을 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5절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지난 시간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두아디라 교회는 형편없는 교회가 아니에요.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있는 교회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만한 놀라운 교회였어요.
그런데도 거짓 선지자의 꾀임에 넘어가서 타락하기 일보직전까지 가고 말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타락하고 멸망 당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은 한 사람도 안 계십니다.
어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그 눈이 불꽃 같으신 주님,
모든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주님
앞에 우리의 죄를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굳게 잡아,
마침내 주님과 함께 크게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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