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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22번째
시간으로서 “성경말씀을 굳게 잡아”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는 이제 두아디라 교회로
보내지는 편지를 살펴보았습니다만, 이번 주도 계속해서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자신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거짓 선지자 이세벨이라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이 여인의 꾀임에 빠져서 행음하게 되고 그리고 우상숭배라는 죄를 짓게 되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과정에 있어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제가 드린 말씀, 기억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 교회가 아주
형편없고 그런 교회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분명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만한 놀라운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라고 하는 행함이라고 하는 열매, 그것도 처음보다 훨씬 더 성장한 성과를 남길 수 있는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거짓 선지자를 물리치지 못했다는 점이 부자연스럽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지금 현대 사회에 있어서의 교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금식 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하고, 그리고 꿈이나 환상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느니 또는 예수님 음성을 들었다느니 하는 사람들이, 자칫 기존 교회에서 정말로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성경 말씀에서 벗어난 가르침이 마치 독버섯처럼 퍼져가게 되어서 교회나
예배의 근간을 흔들게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지요.
지난 주는 20절까지 살펴보았습니다만, 오늘은 이어서 21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1절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이 구절은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말씀처럼 보입니다만, 저는 성경에 등장하는 말씀 중에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말씀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한 구절에 다름아닌 이단의 특징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죄를 짓고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이요?
아니요, 오히려 그 분들에게는 복음이 잘 받아들여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들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굳이 교도소에 가지 않았더라도 복음이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상에는 참 나쁜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
세상적으로 본다면 당장에 천벌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분명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에스겔 18장 30절~32절 “30.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31.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여기서
‘죽을 자가 죽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이겠습니까.
새번역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새번역 판 에스겔 18장 32절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 하기를, 신약에는 회개와 용서가 있지만
구약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무서운 말씀만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죽어 마땅한 죄, 세상적으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돌이켜라. 그러기만 한다면 아무리 죄를 지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멸망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 하더라도 너희가 죽기를 원하지 않고 살기를 원한다. 그러니 어서 회개하고 나에게 돌아오라.
참으로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 오지 않습니까.
그래도 못 알아 들어요?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3장 11절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사람들은 했던 말을 또 하게 만들면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몇 년 동안 학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같은 과목의 수업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있으니까 반복해서 설명을 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질문이 들어오면 똑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했던 말을 또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 힘들어 하거나 지겨워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만, 하나님은 더 하세요.
한 번만 말씀하시면 못 알아먹을까봐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몇 번이고, 그리고
오랜 세월을 통해서도 반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 회개의 말씀은 신약까지 이어져 와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5장 32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15장 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회개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셨고 그 이후에도
회개는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베드로후서 3장 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처럼 예수님 이후에도 성경은 끊임없이 회개를 역설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분명 복음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는 대표적으로 이른바 이단 사이비 집단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죄인들은 복음이 들어가면 회개합니다. 자신의 죄를 자복합니다. 하지만 이단들은 절대 회개하지 않아요.
물론 그 밑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회개하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위에 있는 사람들, 특별히 교주들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요.
사실 그 사람들을 보더라도 처음에는 제대로 된 교회에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선지자나 무슨 특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해요.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요즘 생겨난 것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이단 사이비 역사를 본다면 일제시대 초창기인
1910년대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성경책이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된 시대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어디서 주어
들은 말들로 이것저것 짜깁기를 하고서는 자기가 에녹이다, 자기가 남방여왕이다 하고 그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요.
말하자면 이 사람들이 한국 이단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데 벌써부터 자기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누구는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하고 보혜사라고도 하고, 또는 성경에도
없는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어느 한 집단에서 갑자기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여기저기서 주장해 왔던 것들이에요.
알고 보면 이런 주장은 사실 좀 진부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데에 있는 교주들이 회개를 하겠습니까.
세상적으로 본다고 하면 정치적인 독재자가 회개하는
경우는 없어요.
예컨대 독일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가 회개 했겠어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빈손으로 내려오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단 교주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정치인 정도가 아니에요.
적어도 그 안에서는 웬만한 왕이나 대통령을 뛰어넘어
거의 신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권세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겠지요.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나마 겸손한 교주들은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존재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그러고는 반드시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그것은 바로 성경 해석을 왜곡하는
주장을 합니다.
이와 같이 왜곡된 해석은 창세기부터 시작합니다.
아마 어쩌면 여러분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으실 지도 몰라요.
창세기 3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사람이 먹게
되는데, 이로 인해서 사람은 불순종이라고 하는 죄를 범하게 되어 결국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 말씀을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이잖아요.
하지만 이단 사이비 집단들은 이를 모두 다 비유 또는 상징으로 풀어요.
그 이유는 그래야 기존 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올 수가 있거든요.
그러면 어떤 식으로 푸냐 하면, 유혹을 받은 하와는 사탄과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거예요.
이로 인해서 피가 오염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난 다음 태어난 후손들은 모두 저주받은
혈통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를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주장을 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피를
깨끗하게 해주는 것은 자기들의 교주만이 가능하다고 해요.
이런 말을 웃지도 않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런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억지로 푸는 것이지요.
그리고
신약에서 본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 피로 인해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고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하는 성경 말씀을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어떻게 주장하는가 하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구원사역을 모두 다 이루지 못하고,
도중에 붙잡혀서 십자가에 못 박혀 버리고 말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역은 미완성 또는 실패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예, 그래서 이를 마지막까지 완수하기 위해서? 그렇죠, 자기네들
교주가 왔다는 것이지요.
참 알기 쉽죠?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16절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성경을 그 본래 말씀과 달리 억지로 풀게 되면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이단 집단들은
가장 알기 쉬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외에 다른 책, 이 또한 가장 알기 쉬운 것은 그 교주가 쓴
책이 있다는 점입니다.
교주들은 주장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만났다. 무슨 천사를
만났다. 거기서 계시를 받았다. 책을 받았다는 등의 주장,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과는 다르게 새로운 주장을
해요. 그러면서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부각시키기 위해서 쓴 책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믿는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1장 8절~9절 “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냥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 하더라도 이미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해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답은 역시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3절~15절 “13.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사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정말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셨다면 그것이 가장
진정한 복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만약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서
성경에 적힌 내용과 다른 것을 전한다면, 그건 오히려 사탄이 가장한 모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2천년 전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로는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을 회심 시키시기 위해 잠시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기는 했으나,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성경이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모두가 다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그리고 기록하게끔 하신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 또 누구는 말해요. 어차피
그래봤자 다 사람이 쓴 것이 아니냐.
이 점에 대해서 성경은 또한 말씀하십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여기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 즉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성경에는 정경 외에도 외경이나 위경 또한 존재합니다.
복음주의 개혁주의 교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정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입니다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경전이 외경인데 반해, 가짜 기록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이것이 위경인 것이지요.
저도 예전에 신학을 공부할 때 외경이나 위경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만,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경과 그 내용이 완전히 벗어나 있어요.
가짜인 위경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보면 유독 외경이나 위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성경을
연구하는 교수나 학자들은 그럴 필요도 있겠습니다만, 최소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복음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경을 깊이 알아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서점에 보시면 여러가지 기독교 서적들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좋은 책들도 많지요.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성경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알아야 올바른 복음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엉터리 주장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이단 사이비 집단들의
밥이 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성경말씀을 굳게 잡아,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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