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8회 [요한계시록 제21회] 교회 안에 숨겨진 우상숭배 - 이루리라교회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20절
“18.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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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21번째 시간으로서 “교회 안에 숨겨진 우상숭배”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까지는 버가모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를 살펴보았습니다만, 오늘은 이제 일곱 교회 중에서 네 번째인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에 대해서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공부하게 될 이 편지는 일곱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 중에서 그 분량이 가장 많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그만큼 주님께서는 이 두아디라 교회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신 증거라고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다 좋은 내용으로만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로 보내지는 일곱 편지가 모두 그렇습니다만, 특별히 이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는 지금 이 시대에 한국에서 믿음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를 지금 우리에게 쓰여지는 편지로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은혜로 충만하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여기에 보시면 일단 수신하는 교회와 발신자의 권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신자는 두아디라 교회이고 발신자의 권위는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도 역시 이하에 기록된 부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우선 전체적으로 살펴본 다음에 다시 18절로 돌아오기로 하겠습니다.

다음 19절을 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9절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이는 칭찬의 근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아디라 교회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알고 있다고 하시면서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참고로 여기에는 보시면 앞에는 ‘사업’이라고 하고 뒤에는 ‘행위’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러면 사업은 뭐고 행위는 뭘까 하는 의문이 들잖아요.

이 점에 대해서 헬라어 원어에 보면 똑같이 ‘에르가’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개역한글이나 개역개정에서는 ‘사업’과 ‘행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반해 새번역과 현대인의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어요.

먼저 표준새번역 요한계시록 2장 19절
“나는 네 행위와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

다음으로 현대인의성경 요한계시록 2장 19절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처음보다 지금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표준새번역과 현대인의성경에서는 이처럼 앞에 나오는 ‘에르가’와 뒤에 나오는 ‘에르가’의 번역에 있어서 차이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것이 원어에 충실하고 그리고 뜻도 알기 쉽지 않을까 해요.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서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를 비롯해서, 실천하고 있는 모든 선한 일들을 다 알고 있었으며, 그 일들이 처음보다 더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시다는 뜻이라고 하겠지요.

사실 솔직한 말로 항상 시작은 거할 수 있지만 그게 오래 가기가 쉽지 않잖아요.

어떤 목표를 세웠다 하더라도 점차 시간 지나감에 따라 시들해 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 증거로 예컨대 우리나라에는 작심삼일, 목표를 가져도 3일 이상 가기가 어렵다는 격언이 있습니다만,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닌 일본에도 있고, 그리고 서양에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용두사미. 처음에는 용머리처럼 거창하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뱀 꼬랑지처럼 볼품없어지는 일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두아디라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편지를 받아보는 그들은 무엇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고 계신 지를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실천했던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는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도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친히 인정해주시는 일이니 틀림이 없겠지요.

참으로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이것으로 끝나면 참 좋겠습니다만, 주님의 말씀은 이제 칭찬의 근거에서 책망의 근거로 옮겨갑니다.

요한계시록 2장 20절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우선 20절에 보시면 주목할 만한 이름이 등장하지요. 예, 바로 ‘여자 이세벨’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이세벨은 교회 성도들을 꾀어서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세벨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에 이미 등장한 바가 있습니다.

어떤 인물이었냐 하면 안 좋은 의미로 참 대단한 사람이었지요.

그녀는 이방 왕의 딸이었는데 제7대 이스라엘 왕이었던 아합이 그녀를 왕비로 데려 옵니다.

아합도 악한 정치를 했었는데 그가 데려온 왕비 이세벨은 한 술 더 떴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죽이고는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했지요.

그녀의 기세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열왕기상 19장에 의하면 구약에 있어서 대표적인 선지자라고 할 수 있는 엘리야까지 떨게 만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열왕기상 22장에 의하면 아합 왕은 전쟁에서 사망하게 됩니다만, 열왕기하 9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녀 자신도 하나님의 예언대로,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구약에 나오는 이세벨이나 이 두아디라 교회의 이세벨이나 행음을 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했다고 하니 유사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신학자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이세벨을 하나의 상징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요한계시록 강해 제목이 무엇입니까. 그냥 강해가 아니라 ‘순수강해’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인가 하면 강해 초반에서도 이미 설명 드린 바와 같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순수하게 성경 본문에 기록된 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른바 이단 사이비 집단들이 하는 행태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들은 성경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비유로 풀어요.

그러면서 결국은 자신들이 멋대로 만들어낸 교리들, 자신들이 받들어 모시는 교주를 신격화 시키고 거기에 억지로 갖다 맞추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물론 성경에는 비유도 있고 상징도 있습니다만,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우리는 순수하게 본문에 충실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고, 바로 그와 같은 데에 이번 순수강해의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이세벨’이라고 하는 이름에 얽매일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만약에 ‘자칭 이세벨’이라고 했다면 말이 또 다를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여기에 보시면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여자 이세벨’이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 들여서, 이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때 두아디라 교회에 실제로 있었던 이세벨이라고 하는 이름의 여자, 그것도 자신을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여자 이세벨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겠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 책망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를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이세벨에 대해서다.

자칭 선지자 이세벨이 사람들을 유혹해서 행음하게 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그를 용납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책망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 그런가보다.

어떤 여자가 교회에 들어와서 우상숭배를 하도록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거구나.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 이세벨이라는 사람을 내쫓거나 혼내지 않는다면 뭐, 책망 받아 마땅하겠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우리가 그렇게만 생각해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에 두아디라 교회로 보내지는 편지가 차라리 책망의 말씀부터 시작했다면 이해가 갑니다만, 이미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것을 보면 어떻습니까. 두아디라 교회가 그렇게 형편없는 교회라고 하셨나요.

아닙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실천은 그야말로 칭찬 받기에 충분하지 않았나요?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있는데 처음보다 더 성장했다고 하시면서 주님이 직접 칭찬까지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 정도로 훌륭한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인지 뭔지 하는 자칭 선지자가 판 치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면, 너무나도 이해하기 힘들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 지금 이 시대, 특별히 우리나라를 보시면 어떻습니까.

아무리 기독교인구가 줄어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세계적인 교회, 제가 구체적인 교인 수 같은 자세한 내부사정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외형적으로만 본다면 세계적인 교회가 서울 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만큼 믿음이 좋은 분들도 많이 계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에요. 저는 이런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하면서 자신이 기도 응답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거나, 더 나아가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분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습니다.

그 분들을 보면 기도도 많이 합니다. 금식도 많이 하고, 그리고 또 방언도 얼마나 유창하게 하는지 몰라요. 옆에서 보면 정말 웬만한 목사님보다도 더 열성적으로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이제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상담을 받기도 하지 않겠어요? 그럼 이제 자기가 기도를 해보겠다고 해요.

그러면서 얼마 뒤에는 자기가 응답을 받았는데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저건 저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조언을 해줘요.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리 큰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떤 경우가 생기느냐 하면, 자신이 응답을 받았다고 하면서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 운영이나 예배에까지 간섭하는 경우도 생겨요.

그러면서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아니, 자기가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직접 응답을 받았는데, 자기 말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몰아세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신입교인이 아니에요. 교회에 오랫동안 다녔고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기도도 많이 하고 금식도 많이 하고, 그리고 방언까지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미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한 상황입니다.

그런 사람이 목사님이나 다른 교역자들에게 이것은 이렇게 해야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해야 한다. 내가 응답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강하게 말을 하면 그걸 완전히 뿌리치기가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거기 목회자가 그 교회를 개척하신 분이 아닌, 거기에다 부임한지 얼마 안 되는 분이라고 한다면 결과야 이미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 하면 결국 그 교회의 근간이 흔들리게 됩니다.

교회 운영이나 예배 설교가 엉뚱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말아요.
그 사람이 말합니다. 요즘 목사님 설교 이상하다는 거예요. 영적으로 잘못하고 있다는 해요.

여러분, 그런 소문이 한 번 이상하게 나기 시작하면요, 교회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자, 제가 지금 드린 말씀 중에서 그 기도를 많이 하고 금식을 많이 하고 은사도 받은 사람이 하는 말 중에, 무엇이 빠졌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기도를 많이 하고 금식도 많이 하고 방언도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말이 모두 다 하나님 말씀이고 예수님 말씀입니까.

꿈이나 환상에서 하나님을 보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 그런 말을 전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는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 설교 시간에 말씀 전하기를 자기가 꿈이나 환상에서 보고 들은 예수님의 말씀만을 전하거나 한다면 그것이 이른바 성령충만한 설교입니까.

자, 제가 여러분께 질문을 한 번 드려보겠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한 달 내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로 지진이 일어났어요. 그러면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제가 또 말하기를 한 달 내에 구체적으로 어디 어디에서 화산이 터질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로 그대로 됐어요. 그러면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아직도 안 믿어요?

그럼 제가 또 말하기를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인데 한 달 내에 전쟁이 끝날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로 그대로 됐어요. 그러면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조금 더 해 볼까요?

제가 또 말하기를 한 달 내에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할 거라는 발표가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로 그대로 됐어요. 그러면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정말 그대로 됐으면 그야말로 대단한 것 아니겠어요?

만약에 이런 것을 SNS에 썼는데 그게 모두 맞았어요. 그러면 화제가 되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방송국 같은 데에서 취재를 올 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가 되면 여러분께서는 저를 예언자나 아니면 선지자라고 인정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런 예측을 백 번 해서 백 번 맞았다고 한들 그것이 과연 성경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교회 내에 판 치고 있는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은 교회에 무슨 다른 종교에서 사용하는 것들을 가지고 들어와서는, 그것에 대고 절을 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고 예수님을 우상으로 만들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목사나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만듦으로 인해서, 믿음을 오염시키고 말씀을 오염시키고 그리고 행위 마저도 오염시키는 것 역시 우상숭배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저는 어떤 분으로부터 그런 질문을 직접 들은 적이 있어요.

자기가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거기서 로또 번호를 보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이럴 때는 로또를 사야 돼요? 말아야 돼요?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어떻게 답을 해야 옳겠습니까.

사라고 해요? 하지만 괜히 사라고 했다가 안 맞으면 무슨 소리를 듣겠습니까.

그러면 사지 말라고 해요? 그렇다면 사지 말라고 하는 근거가 뭐예요. 로또를 사는 것이 성경에 어긋나는 죄도 아니잖아요.

여러분, 분명히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목사는 무당이나 점쟁이가 아닙니다.

그럼 목사는 뭘 하는 사람이에요.

누구는 그런 말씀을 해요.

목사님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뭐, 그렇게 귀하게 생각해주신다면이야 황송하겠습니다만, 구약에 보시면 사실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왕이나 제사장이에요.

그리고 신약에 있어서 본다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즉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씀이지요.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 이후에 베드로나 바울이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베드로나 바울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되어 있나요? 아니에요.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목사가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베드로나 바울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요, 왕이나 하물며 예수님과 대등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목사라고 한다면 그 사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조인도 보세요. 유능한 법조인은 헌법이나 법률에 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나요?

아니에요. 그것이 아니라 반대로 헌법이나 법률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유능한 법조인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유능한 운전 기사나 노련한 철도기관사는 어떻습니까.

길도 아닌 곳을 자기 멋대로 가는 것이 유능한 운전 기사입니까.

표지판이나 신호도 제대로 보지 않고 그저 달리기만 하는 것이 노련한 철도 기관사입니까.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에 자기 실력이나 경력만 믿고 과속을 한다거나, 아니면 지름길이랍시고 엉뚱한 길로 들어가게 된다면 큰 일 나잖아요.

저는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철도라면 이미 깔린 철도 위를 달리는 것이니 대충 달려도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지난 2005년 일본 효고 현에서는 대형 철도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무슨 신칸센이나 고속전철이 아니에요. 그냥 일반 전철입니다.

그런데 그 희생자 수를 보면 사망자만 107명에 부상자는 526명에 달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전철이 과속을 했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전철이 지연되었기 때문에 이를 되돌리기 위해 커브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달리다가, 결국 탈선을 하는 바람에 이처럼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노련한 운전기사나 철도기관사는 과속을 하거나 정해진 길이 아닌 길을 달리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코스를 정해진 법규에 따라 안전하게 운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노련하고 유능한 운전기사나 철도기관사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비행기 조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도 다 정해진 길이 있어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관제소와 계속적으로 연락을 하면서 안전하게 날아 가야지, 그렇지 않고 자기 멋대로 날아가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게 될 것입니다.

목사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성경에 없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이는 유능한 목사가 아니라 상당히 위험한 목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어마어마한 대형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이는 목사만이 아니라 교역자나 임직자를 비롯한 교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죠.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에 따라서 말씀을 전해야 하고 여기서 절대로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아무리 명문 신학교를 나왔거나 아무리 큰 교회 목회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성경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요, 영적인 행음이 되어 끝내는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그 어떤 우상에 미혹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에 대한 믿음, 오로지 성경 말씀에 따라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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