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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20번째 시간으로서 “감추어진 만나와 새 이름”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버가모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에 대해서 살펴보는 네 번째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주님께서는 두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는 만나와 둘째는 흰 돌에 적힌 새 이름입니다.
이 두가지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고 이 주제는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우리는 여기서 간략하게 세부적으로 살펴보고 그 다음에 여기에 숨겨진 의미를 함께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기는 자에게는 만나와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이기는 자라고 하는 것은 앞서 말씀하셨던 것 그러니까 우상숭배나 음행에 빠지지 않고 이긴 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바로 만나와 흰 돌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만나는 어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말씀에 의하면 ‘그냥 만나’가 아니라 ‘감추었던 만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이 ‘만나’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의하면 약 400여년 동안 이국 땅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인도 하에
탈출을 하지요.
애굽에서는 하나님의 열 가지 놀라운 이적을 통해서 어렵게 빠져나오게 되는데 그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홍해가 갈라지고는 남녀노소 수 십 만에서 수 백만에 달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가
무사히 홍해를 건넌 반면,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의 최정예 군대들은 모두가 전멸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진군을 하게 되는데,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디를 거쳐야 합니까. 그렇죠. 광야를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광야라고 하는 곳, 그 곳은 척박한 곳입니다. 식량은 고사하고 마실 물조차도 없는 땅. 오죽했으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차라리 노예로
살았을 때가 좋았다고 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까지 했겠습니까.
광야라고 하는 곳은 정말 그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죽음의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선물을 주시지요. 그것이 바로 만나입니다.
성경에는 만나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알면 알수록 신기합니다.
이 만나는 출애굽기 16장에 처음으로 등장을 하는데, 14절 이하의 기록에 나온 만나에 대한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로, 안식일을 제외한 이른 아침, 이슬이 마른 후 광야 지면에 나타나는데, 햇볕이 뜨겁게 쬐면 사라집니다.
두번째로, 그 모양은 작고 둥글며 서리 같았다고 해요.
세번째로, 그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으며, 굽거나 삶아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네번째로, 가족들을 위해 그것을 거두어들이는데, 안식일 전날을 제외하고는 그날에 모두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냄새가 나거나
벌레가 생긴대요.
다섯 번째로, 안식일 전날은 안식일 치까지 거두어들여도 됩니다.
여섯 번째로,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습니다.
일곱 번째로, 사십 년 동안 먹었는데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기 시작하자 만나가 그쳤다고 해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를 두고 그저 자연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성경 기록에 의하면 이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만나가 자연현상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로 광야라는 곳은 앞서 말씀 드렸던 바와 같이 죽음의 땅입니다. 만나가 그 이전에도 있었다고 한다면 광야는 광야가 아니라
그야말로 옥토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로 만약 자연현상이라고 한다면 요일에 상관없이 내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성경말씀에 의하면 6일 동안은 내리고 안식일인 7일에는 내리지 않았다고 해요.
셋째로 거두어 들인 만나는 그날에 다 먹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다고 해요. 그런데 안식일 전날에 거두어들이면 다음날까지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경우에는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자연현상이 7일마다 차이가 생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잖아요.
넷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오로지 이 만나 만을 먹고 살았어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과 같은 3대 영양소 만이 아니라 비타민이나 미네랄 등의 영양소를 반드시 섭취해야
해요. 그래야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고 해도 그저 단순히 많이 먹으면 좋다는 게 아닙니다.
먹지 못하면 영양결핍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만, 무턱대고 많이 먹기만 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영양과잉 문제가 생겨서 이 또한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40년 동안 거의 대부분 이 만나만 먹고 살았어요. 그런데도 영양결핍이나 과잉으로
질병이 생겼다는 말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는 인구 수의 변화를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에는 두 번의 인구조사가 나오는데 민수기 1장에서는 출애굽을 하고 1년
뒤에 조사한 인구가 나와 있으며 민수기 26장에는 그로부터 38년 뒤의 인구가 나와 있는데 거의 변화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를 보더라도 척박한 광야생활 동안에도 만나 만으로 그들이 건강을 유지하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이 만나라는 음식은 어떻습니까.
이를 정리해 본다면 이는 분명 자연현상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예비해 주신 완전하고도 신비로운 식량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 이 만나에 대해서는 일단 여기까지 본 다음에 다시 조금 있다가 살펴보기로 하고, 다음으로는 흰 돌과 새 이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주석서에 보니 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후반에는 ‘흰 돌’과 ‘새 이름’이 나오는데 유독 신학자들은 ‘흰 돌’에 그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보면 ‘흰 돌’이라고 하는 것은 재판에서 무죄를, 운동경기에서는 승리를, 그리고 손님들에게는 환대의 표시라고 하는 등의
해석을 내놓고 있어요.
아니, 이게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 공부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으신 분들이 말씀하시는 해석이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흰 돌’이 아니라 ‘새 이름’이라는 점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옛말에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핵심을 놓친다는 뜻이라고
하겠지요.
그런데 새 이름을 보지 않고 흰 돌에만 집착한다는 것은 마치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에만 집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흰 돌이 아니라 바로 새 이름인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새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이기는 자에게는 새 이름을 주신다고 하는데, 그 이름은 받는 사람 밖에는 알 자가 없다고 말씀하세요.
이를 두고 누구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받는 사람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 사람만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이름’이라고 하는 것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의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한 도구가 두 사람 사이에만 갖는 이름인가요?
이름이라고 하면 보통 은밀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무슨 선거 같은 경우를 보세요.
다들 자기 이름을 알리려고 얼마나 노력을 합니까.
그 외에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명함도 만들어서 열심히 돌리고 그러잖아요. 그것도 역시 다 자기 이름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주님은 알 사람이 없는 이름,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이름을 주시는 주님과 받는 사람 외에는 알 사람이 없는 이름을,
그것도 이긴 사람에게 주신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본다면 앞서 살펴본 만나는 감추었던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주님과 나만이 아는 이름이라고 한다면 이 이름 또한 감추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름, 감추어진 이름이란 어떤 것일까. 아니, 무엇을 위한 이름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이 말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더니 문득 답을 알겠더라고요.
사실 이 계시록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년 전에 쓰여진 책인데, 어쩌면 이 말씀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주님과 나만이 알고 있는 이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조금 힌트를 드린다면 지금 이 시대, 특별히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세상적으로 보아 이런 이름을 자주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일본에서 귀국해서 아직 2년이 채 안 된 상황이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수 십 번은 받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모르시겠어요? 그럼 조금만 더 힌트를 드려볼게요.
여러분이 세상에서 이 이름을 받으실 때에는 반드시 이 말도 같이 듣게 됩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타인노출금지. 타인에게 절대 노출하지 마세요. 타인에게 절대 알려주지 마세요.
어떠십니까. 이제 좀 아시겠어요? 예, 이 말을 언제 듣게 되냐 하면 바로 ‘본인확인 인증번호’를 받을 때 듣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인터넷으로 어디에 로그인 또는 신규 가입을 하려고 해요.
그렇다면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잖아요.
그러면 일단 이름과 생년월일, 예전에는 무엇을 해도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라고 했었는데 요즘은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성별을
나타내는 뒷자리 하나만 입력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휴대폰번호를 적어 넣습니다. 그리고 ‘확인’을 누르면 어떻게 되죠?
예, 삐리릭 하고 휴대폰에 뭐가 옵니다.
그래서 열어보면 뭐라고 적혀 있어요?
예, ‘인증번호’라고 되어 있고 보통 여섯 자리 번호가 보내져 옵니다. 그러고는 예, “타인에게 알려주지 마세요”라고 하잖아요.
사실 제 주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제 이름이야 알겠지요. 조금 더 친한 사람이라면 생년월일도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성별이야 뭐, 요즘은 일부 특별한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대부분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죠.
하지만 이름과 전화번호, 생년월일, 그리고 성별만 가지고는 부족해요.
상대방과 나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에 뭐예요?
예, 그것이 바로 ‘본인확인 인증번호’라는 것이지요.
자, 그러면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는 감추어진 새 이름, 받는 자 밖에는 모른다고 하는 그 이름은, 요즘 우리가 아는
말로 하자면 바로 ‘인증번호’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흰 돌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 인증번호가 어디로 와요? 예, 그렇죠. 폰으로 옵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의 말씀을 알기 쉽게 이해하려면 새 이름은 본인확인을 위한 인증번호이고 흰 돌은 이 인증번호가 오는 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셨지요?
이제 다음 단계입니다. 주님께서는 승리한 우리에게 인증번호를 주신다고 하세요.
그렇다면 여기서 또 의문이 생깁니다.
무슨 의문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왜’라는 의문 아니겠어요?
주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인증번호’를 주시는 것일까요.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이 인증번호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무슨 명예를 위해서가 아닌 구체적인 이용수단으로서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이 새 이름,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인증번호는 무엇을 위한 것, 어디에 쓰기 위한 것일까요.
이 또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본인확인 인증번호는 무엇을 위해 사용합니까.
알기 쉬운 것이 바로 회원가입이지요.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과 폰 번호를 입력하면 폰에 인증번호가 찍힙니다.
그러면 그 번호를 입력하게 되면 비로소 회원가입을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이처럼 어딘가에 가입을 하거나 또는 어떤 절차를 통과하기 위해서 우리는 폰과 인증번호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면 폰과 인증번호를 주님께서 주시는 흰 돌과 새 이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폰과 인증번호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예, 여기서도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자, 주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서 막혔던 길을 열어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막혔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홍해를 열어 주셔서 수 많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굳게 닫힌 곳이 어디였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소로 향하는 휘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휘장도 열어 주셨어요.
마가복음 15장 38절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더니 그 공로로 이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그 휘장이 찢어져서 열리게 된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런데 말이에요. 성경을 보았더니 단 하나, 아직도 열리지 않은 길이 있었습니다.
이 길만은 한 번 닫힌 뒤로는 역사상 열린 적이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길은 어디로 향하는 길일까요.
자, 여기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우선 성경에 나오는 천사들의 종류부터 알아볼까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들의 종류는 크게 나누어서 세 종류가 있는데 이는 일반 천사와 스랍과 그리고 그룹천사입니다.
일반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라는 단어로도 등장하는데 이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일을 시행하는 천사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소식을 알린 가브리엘 천사 또는 천사장 미가엘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스랍은 이사야 6장에 두 번만 등장하는 천사인데,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천사가 그룹 천사입니다.
일반 천사는 하나님의 명을 시행하는 천사이고, 스랍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라고 한다면, 그룹 천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예, 그것은 바로 지키는 역할을 하는 천사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 성소로 향하는 휘장에 그룹 천사를 그려서 그 길을 지키게 하였고, 그리고 하나님의 돌판이 들어있는 언약궤들
덮고 있는 속죄소에도 그룹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룹 천사의 역할은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게 되는데, 성경에서 이 그룹이 실제로 처음 지키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바로 중요한 길을 지키는 것이에요.
한 번 가로막히고는 단 한번도 열리지 않은 길. 그것이 어디입니까.
그 길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길이에요.
창세기 3장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첫 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선악과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먹어도 돼. 다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 먹지 말아라.
이 계명만 지키면 너희가 나에게 대해서 온전한 순종을 다 한 것으로 여기고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축복을 영원토록 너희에게 부어
줄게.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을 약속해 주셨던 것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이 율법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에덴에서 내쫓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창세기 3장 24절에 나오지요. 생명 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 버리시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시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감추었던 새 이름 곧 인증키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죠?
그것은 바로 역사적으로 단 한번도 다시 열린 적이 없는 생명 나무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 아멘.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지금 아멘 하신 분들도 좀 반신반의, 그게 사실일까. 아니면 홍 목사가 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그래 좋다. 주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새 이름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던 길을 열기 위한 것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 길이 어떻게 창세기 3장에서 막혔던 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주님이 주신다는 새 이름이 생명나무로 향하는 길을 여신다는 뜻이냐 하고 제게 질문을 하시겠지요.
하지만 그 가장 큰 단서가 바로 이 말씀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다시 한번 창세기 말씀을 보실까요?
창세기 3장 22절~24절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렇죠. 그룹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신 것은 다름 아닌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앞서 살펴보았던 만나를 다시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아본 바와 같이 광야 생활 동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식량, 그것도 이 세상에서는 구할 수 없는 하늘 양식은 오로지
만나였습니다.
만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하고도 신비스러운 식량이었어요.
다른 것은 필요없어요. 이것만 먹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요. 이는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생명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감추어진 만나, 생명의 양식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주시는 것이 흰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무슨 이단이나 지금까지 없었던 가르침을 말씀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감추어진 만나와 새 이름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예, 그렇죠. 역사적으로 가로막혔던 길이 열리면 이 길을 통해서 천국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생명나무의 열매를
얻음으로 인해서 영생을 얻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 요한계시록 2장 17절은 창세기 3장 24절과 함께 보았을 때 비로소 그 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기는 자란 무엇에 대해서 이기는 자를 말씀하고 계십니까.
이미 우리는 버가모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습니까.
바로 발람의 가르침으로 상징되는 우상숭배와 육적인 타락, 다시 말해서 영적인 음행과 육적인 음행을 이기는 자에게는 그 동안
가로막혔던 길이 열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며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감추어진 만나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감추어진 만나와 흰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을 모두 얻음으로써, 마침내 천국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
영생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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