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4회 [이루리라 좋은소식] 영광과 평화 - 이루리라교회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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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후원
KB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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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참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작년 어떠셨습니까.

어느 해나 그랬던 것처럼 기쁘고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일들도 적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 만으로도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본다면 지난 한 해에는 한국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해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재작년 2024년 8월 그 무더위와 태풍 속을 가방 몇 개 들고 10년 만에 귀국한 저희들은, 선교회 측에서 제공해준 숙소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본래는 한 곳에 6개월 정도 머무르고 있다가 새롭게 집을 얻으면 그 곳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이게 참 계획에 차질이 생기더니 결국 5개월 동안에 3번, 일본에서 처음 숙소로 들어간 것까지 포함하면 총 4번이나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누구의 잘못이나 실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다들 그만한 사정이 있어서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한 번 이사하는 것도 힘든데 그 짧은 기간 동안에 그렇게 자주 옮기게 되니까 참 힘들더라고요.

이 과정에 대해서 자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말씀 드릴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아무튼 재작년 특히 8월 이후에 귀국한 후에는 외국도 아닌 내나라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착하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서 겪은 것보다도 여러가지로 새로운 경험을 더 많이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작년 2025년 1월에 4번째로 이사를 하면서 제대로 정착할 집에 입주를 했고 비로소 주민등록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살 집이 있고 주민등록을 한다고 하는, 참으로 대단하지도 않은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처음부터 하려고 하니, 진부한 말씀입니다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한 해는 온라인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도 전도에 힘을 기울여 온 한해였습니다.

여전히 교회개척이나 재정을 비롯해서 여러 과제들은 많습니다만, 그래도 주님의 인도하심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으로 동역해 주신 여러분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사역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2026년에는 보다 더 풍성한 열매를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함께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탄과 연말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에서 “영광과 평화”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작년에 몇몇 분들께 성탄카드를 보내 드리면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로 시작하는 말씀을 적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표현, 우리에게 대단히 익숙한 말씀 아닙니까. 그래서 저도 무심코 그와 같은 말씀을 적었던 거죠.

그리고 이제 성탄과 연말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에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제목의 설교말씀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게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럼 뭘 모르겠냐 하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말 뜻이 잘 안 들어와요. 그 말씀이 잘 와 닿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런 일은 별로 없는데 그 날은 제 아내에게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뜻이 잘 모르겠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뭐, 그럴 땐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예, 그렇죠. 좀 끙끙 앓다가, 그래, 내가 이렇게 고민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하고 성경을 펴봤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성경을 찾아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말씀이 성경에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예, 성경에는 그와 비슷한 말씀이 있기는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보자면 ‘영광’과 ‘평화’라는 단어가 한 절 안에 들어가 있는 말씀은, 누가복음 2장 14절과 19장 38절인 단 두 구절이에요.

그 중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나타내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말의 출처는 아마도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2장 14절이라고 여겨집니다.

다시 한 번 볼까요?

누가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 단순히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막연하고 잘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 이 말씀을 들으니까 아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단순히 “하늘에는 영광”이라는 막연한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는 영광이시요, 이 땅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현대인의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한없는 평화를 부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놀라운 찬양이 어떻게 드려졌다고 성경에 나와 있어요?

바로 앞 누가복음 2장 13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금 이 장면은 당시 밤에 밖에서 자기 양들을 지키던 그 지역 목자들에게 천사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입니다만, 그 때에 갑자기 수많은 천사들이 나타나서 이와 같이 찬양을 했다고 하니 정말 상상만 해도 너무나 놀라운 장면 아니겠습니까.

저는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일반 사람들의 탄생에 비해 대단히 비극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에요.

아니, 그렇잖아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세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렇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단순히 잘 먹고 행복하게 일생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십자가에 의한 대속 아니겠습니까.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로마서 4장 25절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 된 우리를 대신해서 죄 없는 어린양으로 하나님 앞에 완전한 제사로 드려짐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의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니 참 예수님의 탄생은 알고 보면 기쁨보다는 슬픔, 비장함, 뭐 이런 단어가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따지자면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제아무리 축복받은 탄생을 맞이했다 하더라도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주님께서 부르시면 언젠가는 어떠한 모습이든 죽음으로 그 끝을 맞이합니다.

사람마다 그 인생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그 평가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요.

기업인이라면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정치인이라면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남겼는지, 아니면 자녀들을 얼마나 양육했는지, 그 기준들은 다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 있어서의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

예전에 제가 한때 목사님들과 같이 영어공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영어선생님이 과제를 내주셨는데 성경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하고 그 인물에 대해서 에세이를 써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뭐 굳이 영어나 에세이가 아니더라도, 여러분께서 이와 같은 과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본받을 만한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여러분께서는 누구를 선택 하시겠습니까.

제 기억에 의하면 목사님들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은 바울을 선택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저는 누구에 대해서 에세이를 썼을 것 같습니까.

예, 저는 망설임없이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에세이를 썼지요.

이를 본 목사님들의 반응은 대부분 좀 시큰둥했습니다.

에이, 홍 형제……그 때는 제가 ‘형제’였으니까요.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홍 형제, 그건 좀 아니지……그러시는 것이었습니다.

뭐, 그 의미는 알 것도 같아요.

일단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이시니까 본받는다기 보다는 믿음의 대상이지……뭐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역시 그러신가요?

성경을 살펴봅니다.

로마서 8장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15장 5절~6절
“5.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어떻습니까. 성경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름아닌 예수님을 존경하고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셨지요?

그러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알았어요.

그렇다면 원점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어떤 삶을 사셨기에 우리는 본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빌립보서 2장 6절~8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기독교를 가장한 일부 종교단체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 또는 아예 예수님을 우리 같은 피조물로 여기는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보시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보다 못한 피조물이래요?

아닙니다.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같은 창조주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어떤 죽음이었습니까.

로마서 5장 7절~8절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 때 보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운 분들이 많지요.

사실 우리가 이름을 아는 인물들 외에도 이름없이 싸우고 헌신했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조국이나 민족을 위해 희생을 한 것이 아닌, 지금 당장 지옥에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 귀한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는 이미 구약에서도 예언된 바가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멋대로 행하는 죄인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 시키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삶을 보십시오. 특별히 성경에 자세히 기록된 공생애 기간을 본다면 어떠한 삶을 사셨습니까.

요한복음 6장 38절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못난 양 같아서 자기 멋대로 하며 죄를 짓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스스로의 일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내신 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오셨다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삶을 본다면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앞부분에 기록된 것처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다음으로 오늘 본문 후반부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라는 말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026년 새해가 밝은 지금 세계적으로 본다면 어떻습니까.

2022년 2월 24일에 시작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은 여전히 끝날 줄을 모릅니다.

2023년 10월에 시작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무력충돌도 그렇지요.

이른바 가자전쟁은 그 뿌리가 무려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처럼 세상의 평화는 한시도 쉼 없이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의 위협이 어디 세계적인 전쟁 뿐이겠습니까.

지난 해의 국내 정세만 하더라도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리고 각 가정, 각 개인도 역시 마찬가지지요.

여러 사정은 각양각색이겠습니다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시고 만사형통,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꼭 그렇게 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시편 중에 23편이 있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시작하는 말씀인데, 혹시 시편 23편 4절을 기억 하십니까.

시편 23편 4절에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일이 결코 없다고 합니까.

시편 23편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기를 보십시오. 믿는 사람들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만약에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시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두려워해야겠지요. 걱정해야겠지요. 낙심도 좌절도 절망도 포기도 해야겠지요.

그러나 시편기자는 뭐라고 고백합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하더라도, 아무리 위기와 고난과 고통과 시련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면, 우리는 두려움을 물리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통 분입니까. 예수님이 보통 분이세요?

우리를 위해서 온 천하 만물을 모두 지으신 분 아니십니까.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 주실 정도로 우리에게 사랑을 확증해 주셨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은 일 기쁜 일로 넘치시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만, 그러나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간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님이 안 보일 때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여러분,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누가복음 17장 21절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내가 주위를 돌아보아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이를 바꾸어 보면 무슨 뜻입니까.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위를 돌아보아도 주님이 안 보이신다면, 그 이유는, 정말로 주님이 안 계시거나, 아니면 너무나도 멀리 계셔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계셔서, 다시 말해서 우리와 너무나도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6년이 밝았습니다.

이제 올 한 해 동안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주님께서 순종하셨던 그 순종을 본받아 행함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는 무한한 영광을 돌리고,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에게는 한없는 평화가 넘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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