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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10번째 시간으로서 “환난과 나라 그리고 참음 (2)”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는 환난에 대해서 알아보았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환난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그렇다고 꼭 믿음이 적어서 또는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믿음의 선배들도 거의 예외 없이 환난을 겪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에 알아본 바와 같이 그 순간은 대단히 어려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나고 보면 그 환난이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본문 중에서 환난 다음에 나오는 말씀을 보아야 하겠지요.
환난 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예, 바로 ‘나라’입니다.
오늘은 ‘나라’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환난에 동참한다는 말씀은 이해가 되겠는데, 나라에 동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그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만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보다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중요한 점을 간과할 수도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여러분께서는 성경에 대한 말씀을 배우면서 ‘유업’이라는 말을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7절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너희가 지금까지는 종이었지만 이제 아들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유업을 받을 자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유업을 받을 자가 무슨 뜻입니까.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유업을 받을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다른 대표적인 한글 성경인 새번역, 공동번역 그리고 현대인의성경에 의하면 모두
‘상속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상속을 받는다는 뜻인데,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것을 나도 갖게 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주석서에 의하면 유업을 받을 자, 즉 상속자를 뜻하는 헬라어 ‘클레로노모스’라는 말에 대해서 이를 두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누리는
모든 축복을 소유한 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누리는 모든 축복을 소유한 자……라고 한다면 이것 만으로도 대단한 축복이긴 하지요.
그러나 이 말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누리는 모든 축복을 소유한 자”라는 뜻은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라는
말과 하등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자라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뜻이라고 하는 해석, 저는 이것 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고 해석을
합니다.
아니,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뭘 더 바랄 게 있냐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니요.
성경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것을 주시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우선 조금 원론적인 부분부터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세상은 어떤 나라일까요. 혹시 여러분께서는 이런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럼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려볼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고 신앙을 잘 지키면서 주어진 삶을 다 한 후에 생을 마감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하늘에 있는 천국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서 그냥 영원히 편안하게 살면 되는 것인가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 한 가지 점에 대해서 볼까요.
여러분께서는 휴거라는 말에 대해서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시 것입니다. 휴거. 즉 마지막 날에 하늘로 들어올려진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 휴거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로 올려진다는 이른바 ‘휴거’의 출처라고 여겨지는 곳은 단 한 군데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17절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만 있을 뿐이에요.
자, 이 말씀에 대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하늘에 올라가서 거기에 있는 천국에서 살게 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으신가요.
하지만 그러면 좀 얘기가 복잡해 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신다고 우리는 지금까지 배워 왔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재림 즉 이 땅에 다시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그것도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공부한 바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게 되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다고 한다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길이 엇갈리지 않겠어요?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고 우리는 하늘에서 살게 되나요?
이렇게 말씀 드리면 어떤 분은 그런 말씀을 하실 지 모르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심판하신 다음에는 다시 하늘로 올라 가셔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되는 거지.
이 말씀은 어떻습니까. 나름 설득력이 있어요? 이를 정리하자면 어떻게 됩니까.
장차 우리는 하늘 나라로 올라가게 되고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심판하신 다음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서 천국에 살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재림을 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좋습니다. 그렇다면 재림을 하셔서 이 땅을 심판하신 다음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다는 성경구절, 있습니까. 있다면 어디 있습니까.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신 다음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다는 말씀이 적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 번 근본적인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애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세상은 어떤 나라일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이유는 저 높은 하늘나라에서 함께 지내기 위해서인가요?
저는 여기서 여러분께 새로운 환상이나 예언을 말씀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한결같이 여러분께 성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분명한 세계가 너무나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 바로 에덴입니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천하만물을 창조하셨고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분은 이 세상이 죄로 물든 곳,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라질 것처럼 생각하시는데, 아니, 죄로 물든 것은 사람이 그런 것이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창세기 2장 말씀을 보십시오. 그 기록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창세기 2장 10절~14절
“10.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지금은 금 한 돈에 몇 십만원이나 하지 않습니까.
그도 그렇겠지요. 지구상에 몇 군데 안 되는 금광이라고 하는 곳을 깊숙이 파 들어가야 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금광을 파 들어간다고 해서 금덩어리들을 캐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금광에서 캐낸 광석 1톤, 1000킬로 중에서 금이 어느 정도 있으면 괜찮은 금광이라고 할 수 있는지 제가 찾아보니까 1000킬로 중에서 대략
5그램 정도 나오면 금광으로 인정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성인 남성 13~14명 정도 모아 놓는다면 그 중 한 사람 주머니에 들어 있는 작은 동전 하나 정도? 그 정도면 금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실제 금광석을 보면 동전처럼 하나로 뭉쳐 있는 게 아니에요.
그 1톤 안에 여기저기 아주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것들을 깨고 거르고 정제하고 난 다음에 그 부스러기들을 하나하나 모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오랜 시간과 수고를 거쳐서 5그램이 나오면 그게 금광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금이 비쌀 수 밖에요.
하지만 에덴에는 금들이 아주 흔했고, 그것도 순금이라고 하잖아요. 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것들로 넘쳐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을 하나님께서는 손수 창조하셨어요.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서요?
예, 바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하신 사람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셨던 것은 단순히 에덴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신 것만이 아니에요.
아담이 에덴에서 했던 일을 보시면 어떻습니까.
창세기 2장 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개역개정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고 되어 있어요.
이 말씀을 보시면 무슨 하나님께서는 농사일을 시키려고 사람을 지으셨나 하고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번역본에 보면 그렇지 않아요.
현대인의 성경은 “그 곳을 관리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되어 있고, 새번역은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그리고 공동번역도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농사일을 한 것이 아니라 에덴을 전반적으로 관리했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표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사명이 보다 명확하게 나와 있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28절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분명한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하만물들을 모두 다스리게 하시려고 했던 것이지요.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주민등록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다른 나라들도 형식은 좀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지역에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지역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행정적으로 그 지역을 관리하는 사람은 지자체 단체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을 때 단지 에덴에 살 수 있게만 하시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던 거예요.
그 증거라고도 할 수 있는 놀라운 구절이 있지요.
창세기 2장 19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생물들에 대해서 아담이 이름을 붙이는데 그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무슨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나 고양이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니에요.
그 생물에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지요.
아담이 이름을 붙였더니 그것이 그 생물 전체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그야말로 아담이 이 세상을 다스렸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시장이나 도지사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권세가 있습니까.
아니, 대통령이나 총리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권한은 없겠지요.
이와 같은 권한, 이는 다름 아닌 왕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제가 대충 말씀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공부하겠습니다만, 예습하는 의미에서 22장 구절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저 천국에 가서 무슨 애완동물 같이 편안하게 놀고 먹기만 하라고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분명한 사명을
주셨어요.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유업으로 받아 왕으로서 다스려야 한다는 사명이 있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왕이라고 하면 또 오해를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왕인데 어찌 우리가 왕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자, 여러분도 조선시대 때 사극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조선 왕이 나오지요? 그러면 왕이 자기를 가리켜 뭐라고 부릅니까.
내가? 아니면 제가? 그렇게 말하나요?
다음에 사극을 보실 때 잘 들어보세요. 조선시대 때 왕은 자신을 가리켜서 ‘과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요?
그러면 ‘과인’이라고 하는 말이 무슨 대단한 뜻인가 하면 아니요, 한자만으로 본다면 ‘과인’이라고 하는 말은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과인’의 ‘과’자는 남편과 사별한 여성을 가리키는 ‘과부’ 할 때의 ‘과’자입니다.
비록 글자나 뜻은 그리 좋은 뜻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과인’이라는 말은 당시 ‘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말이었지요.
통치자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 중에서는 ‘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조선 왕이 쓰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짐’이라는 말은
황제만 쓸 수 있는 말이었거든요.
그렇다면 황제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렇죠. 중국에 있었던 것이지요. 중국에는 천자라고도 하는 황제가 있었고 황제는 각 지역을 다스리는 관직을
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왕’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당시로서는 조선도 중국 명나라 황제 밑에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황제라고 부르지 못하고 왕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성경에도 나옵니다.
여러분도 들으신 적이 있으실 ‘분봉 왕’이라고 하는 직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로마에는 황제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황제 가이사가 나오지요? 하지만 당시 로마는 모든 지역을 직접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마다 다스리는
통치자를 세워서 일정 정도의 재량을 주었습니다.
그 통치자가 바로 ‘분봉왕’이었던 것이지요.
아담은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천하를 다스리도록 하는 왕으로서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그와 같은 놀라운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배신함으로 인해서 결국 저주를 받고 모든 특권을 다
빼앗겨 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 계시록 순수강해를 통해서 공부해 나아가겠습니다만, 이제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회복하시고 바로 이 땅 위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아 왕으로 다스리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이지요.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환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만, 제가 환난은 뭐라고 말씀드렸는지 기억 나시나요?
주님 안에서 우리가 겪는 환난은 무엇이 되는 길이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예, 그렇죠.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길이요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길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오늘 제가 드린 말씀에 의하면 이것이 거짓이나 과장인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길,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는 왕으로서 세움을 받는 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갈라디아서 3장 29절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바깥에 있으면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을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삶을 통해서,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아 장차
왕으로서 크게 쓰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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