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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7번째 시간으로서 “구름을 타고 오실 주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조금 세분화해서 살펴볼까 했습니다만, 그보다는 조금 더 과감하게 두 부분 만으로 나누어서 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앞부분
요한계시록 1장 7절 전반부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여기서 “그”는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장차 오실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오늘 본문은 기록합니다. 그런데 누구는 이 말씀이 ‘상징적인 묘사’라고 해요.
여기에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정말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뜻이 아니라,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씀은 정말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실제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으로 생각되십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유념해야 하는 점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와 같은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나와
있는 기록이 ‘상징’이냐 아니냐 하는 부분인 것이지요.
분명 성경에는 다양한 비유나 상징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를 단지 현실성이 없다거나 기존에 가지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무작정 ‘상징’이라고 하게 된다면,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모든 것을 상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냐 하면, 예수님도 상징이다, 십자가도 상징이다,
그리고 보혈도 상징, 부활도 상징이 되어 버립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도 상징이고 에덴도 상징, 아담과 하와도 상징, 노아의 홍수도 상징이라고
하는 식으로 겉잡을 수 없는 성경해석의 비약이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성경은 완전히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가 되고 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징으로 도배되어 있다면, 이는 해석하는 사람마다 그 뜻이 달라지게 되는데 그게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되겠습니까.
이미 몇 번이나 인용을 한 구절이지요?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구절에 대해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상징이라고 해석을 하게 된다면 이는
성경을 전적으로 오해하게 되고 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있어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무턱대고 상징이라고 하는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는 본문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분명한 근거 있을 때에 한해서 상징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합니다.
백 보 양보를 해서 이와 같은 내용이 여기 한 구절만 나와 있다고 한다면 상징이라고 의심해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0절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26장 6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가복음 13장 26절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마가복음 14장 6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누가복음 21장 27절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장차 다시 오실 때에는 분명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말씀하고 계세요.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에요. 사도행전 1장에 보시면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여기서 1장
9절~11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9절~11절
“9.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그 모습을 구름이 가렸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흰 옷 입은 두 사람,
아마도 천사라고 여겨지는 이들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고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주님이 장차 다시 오실 때에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기록이 반복적으로 성경에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실적
설명이 아니라 상징적인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를 어찌 올바른 성경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요.
예수님께서는 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하셨을까요. 그냥 단순히 멋이 있게 보이기 위해서 그러시겠다는 말씀일까요?
이는 앞서 인용했던 이사야 7장 말씀과 그 의미가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께서 처음 오실 때에는 처녀가 잉태해서 낳는 아들로서 오신다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뭐라고 말씀 드렸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예, 그렇습니다. 이 예언처럼 오시는 이가 바로 메시야라고 하는 증거인 것이지요.
아무리 달변가이고 아무리 인기가 있는 종교인이라 하더라도 처녀로부터 태어난 분은 예수님 이전에도 없었고 예수님 이후에도 없습니다.
이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 예언대로 오신 분, 단 한 분이신 예수님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라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차 다시 오실 때에는 어떠시겠습니까.
2천년 전 처음에 오실 때에는 이스라엘의 중심 예루살렘도 아닌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극히 일부 사람들만 알도록 조용히
태어나셨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오실 때에는 그렇지 않아요.
우선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보면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교주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구름을 타고 왔다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에요. 없습니다.
하지만 또 모르지요. 어쩌면 자신이 구름을 타고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이는 다음에 설명 드리는 이유로 사실이 아닙니다.
따라서 결론은 하나지요. 예수님께서는 아직 재림하지 않으셨고 지금 현재 자신이 그리스도다 예수다 메시야다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좀 그 뭐라고 할까요. 일종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 말씀 후반부를 보실까요?
요한계시록 1장 7절 후반부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 말씀 중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누가 그 모습,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모습을 보느냐 하는 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좋은 사람, 직분을 받은 사람, 기도나 금식을 많이 하는 사람한테만 보인다고 하시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모든 사람의 눈이 그를 볼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성경에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고 지금 자신이 그리스도다 재림 예수다 메시야다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기 위해서는 그렇다면
우리도 그 사람이 구름을 타고 오는 모습을 보았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혹시 지금까지 누군가가 구름을 타고 오시는 모습을 보신 분이 계십니까. 아니,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에요.
만약에 자신이 믿고 있는 그 교주가 구름을 타고 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면, 역시 그 분도 조금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오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의 모습을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마태복음 24장 24절~27절
“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사이비 교주들이 득세하면서 자신들이 그리스도다 선지자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믿지 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번개가 동편에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번개는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광속, 빛의 속도 아니겠습니까.
빛의 속도는 초속으로 약 30만킬로입니다. 말하자면 1초에 30만킬로를 간다는 것이지요. 지구 둘레가 4만킬로이니까 30을 4로
나누면 7.5가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을 돌 수 있는 속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오시게 되면 굳이 누군가가 말하지 않더라도 순식간에 전세계 차원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2천년 전에 이 땅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은 부활하여 지금 이 순간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예수님을 찌른 사람들,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이나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망치로 못박은 군인들은 모두 다 지금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을 찌른 사람들도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 그 모습, 구름을 타고 오시는 모습을 볼 것이라고
하잖아요.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찌른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 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고, 예수님이 머리 되신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곧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찌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가 그 자녀에게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고 거역한다고
한다면, 이 역시 부모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가 구주 되신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습니까.
꼭 자기가 재림 예수나 선지자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려는 이단 사이비 교주나, 아니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교회를 핍박하거나 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는 것 또한 예수님을 찌르고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전도지를 돌리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좀 많이 걸어서인지 다리가
아프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보면 횡단보도에 의자가 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거기 앉아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마침 그 자리에 가판대를
세우고 전단지를 넣고는 나름 전도를 한다면서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거리에서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딱 보니까 어디서 나온 사람들인지 알겠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의 홈페이지에도 당당하게 “예수님을 숭배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어요.
가만히 그 사람들이 설치해 놓은 가판대를 보고 있었더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거기까지는 그 사람들도 인정을 해요.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수 백 번 십자가에 못 박힌다 하더라도 우리 이웃의 죄는 고사하고 우리 스스로의 죄조차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또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해결된 것인데, 이 사실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여전히 피조물로 생각한다면 그 모순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서 거기 계신 남자분, 저보다 조금 연배가 있으신 분께 조용히 여쭤봤습니다.
“저, 잠깐 질문이 있어서 그런데요. 거기서는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잖아요? 그런데……”
라고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뜸 하시는 말씀이,
“예, 저희는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령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여기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좀 길어질 것 같아서 제가 말을 했지요.
“예, 그 점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여쭤보려고 해요.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해결 되었다는 것은 믿으시잖아요?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아무리 십자가에 달려도 우리 이웃의 죄는커녕 우리 스스로의 죄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세요? 아니면 피조물이세요?”
그러자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천사와 같은 분이십니다. 천사는 피조물이거든요.”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천사가 피조물이라는 것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선생님은 예수님도 피조물이라는 것인가요?”
그러자 그 분은 맞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성경에는 미가엘과 가브리엘이라는 천사 이름이 등장합니다만, 그렇다면 예수님이 아니라 만약에 미가엘이나 가브리엘이 십자가에
달렸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죄가 해결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러자 이 분이 좀 말씀이 막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자 옆에 있던 조금 젊은 사람이 말하기를 “’만약에’라는 가정의 얘기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는 아하,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경 해석에 있어서의 모순을 지적하니까 역시 혼란에 빠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거기도 세계적인 단체이니까 나름대로 이론무장이 어느 정도 되어 있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서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는 사람들도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예수님을 무슨 천사들 같은 피조물이라고 하셨나요? 긴 말을 할 것 없이 히브리서를 보시면 금방 해결됩니다.
히브리서 1장 2절~3절
“2.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세계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라고 성경에 적혀 있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1장 4절~5절
“4.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히브리서 1장 13절
“13.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이어서 예수님은 천사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천사는 비슷한 존재가 아닌 창조주와 피조물이라고 하는 관계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천사에게 감히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습니까.
그 사람들도 나름 성경을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요.
하지만 이와 같이 히브리서 1장만 보더라도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는데 그 사람들은 도대체 성경을 어떻게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아요? 성령님은 그저 하나님의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고요?
계시록 순수강해 제5회 때 이미 우리는 살펴 보았잖아요. 요한계시록 1장 4절에서는 성령님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만약에 성령이 무슨 하나님의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능력에 무슨 이름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다음 구절은 어떻습니까.
고린도전서 1장 24절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
만약에 성령님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이 그래도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예수님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처럼 불과 몇 마디만 말을 해봐도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되신 성자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주장, 성령님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반성경적이고 완전한 모순에 빠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와요.
요한일서 2장 22절~23절
“22.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 되신 그리스도 메시야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들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아들을 부인하면 아버지 또한 부인하는
것이며, 아들을 시인하는 것은 아버지도 시인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단 이단 사이비 집단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어느 한 일본의 유명한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2025년 9월 현재,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있어서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이유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이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일본인 목사님의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만약에 유대인들 만이 선민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돼요? 예, 유대교로 개종을
해야 되겠지요.
그리고 매주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밤까지의 안식일을 지키고, 남자들은 태어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구약에 있는 음식물에 대한 규례들도 철저하게 지켜야 하겠지요.
레위기 11장 7절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되어 있으니까 삼겹살도 먹으면 안 됩니다.
역시 레위기 11장 12절에서는 수중생물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으니 제가 좋아하는 문어나 오징어도
먹으면 안 되겠지요.
자, 그렇게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여기서 또한 중요한 핵심은 뭐냐 하면 유대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민이니까 기독교인들은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
만약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도 영원한 선민,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한다면 이를 뒤집어보면 어떻게 됩니까.
예, 우리는 반대로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이런 답답한 주장이 복음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는 목회자로부터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유대인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나요?
로마서 2장 28절~29절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여기서의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 선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를 좀 쉽게 바꾸어 본다면 다음과 같이 말씀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선택 받은 민족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선택 받은 민족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여러분, 복음 안에 있어서는 지금 중동에 있는 저 이스라엘이 선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우리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주님안에서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적으로 본다면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유대교는 선택 받은 민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미
구원이나 복음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성지 순례라고 하지요. 그것을 가지 말라고까지는 말씀 드리지 않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거기를 가는 것과 우리의 신앙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머무르셨던 장소에 불과합니다.
예루살렘을 아무리 뒤져봐도, 시내산에 아무리 올라가봐도 하나님은 거기 안 계세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건 성지 순례가 아니라 단지 성경명소 관광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 안에 계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2장 1절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성경을 왜곡하고 예수님의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럴 때 일수록 우리는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완전하고도 유일한 하나님 말씀이신 성경 말씀을
더욱더 굳건하게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유혹과 불의를 이기고, 마침내 구름을 타고 오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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