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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 순수강해 6번째 시간으로서 “한 영혼의 무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먼저 한 가지 질문부터 하고 시작할까요.
자, 지금부터 드리는 질문을 잘 들으시고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의 무게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표현으로 다시 질문 드릴까요?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의 무게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이런 질문을 들으시면 어떻습니까.
조금 교회에 다녀 보신 분들이라면 망설임없이 이렇게 대답하시지 않을까 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다.”라는 말씀을 많이 들어오셨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어떻습니까.
출애굽기 12장 29절~30절
“29.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애굽 사람들의 장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이 기르고 있던 가축들 중에서 처음 난 것까지
모두 다 치셨다고 합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면 그 때 하나님께서는 눈 하나 깜빡 하셨습니까.
사무엘상 15장 3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명령을 내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슬퍼하셨나요?
신명기 20장 17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사는 이방 민족들을 모두 다 진멸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서
죽어갈 이방민족들에 대해서 가슴 아파 하셨습니까.
어디 그 뿐인가요.
창세기 7장 23절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신학자들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기 전의 세계 인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다 물로 쓸어 버리셨어요. 그렇다면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셨나요?
그리고 이와 같은 준엄한 심판은 이방민족들만 당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의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자손들도 몇 번이고 멸망의 위기에 직면할 정도로 심판을 받기도
했었어요.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면서요.
여러분,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합니까. 아니, 여러분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과연 그렇게 나와 있을까요?
여기서 저는 여러분께 안타까운 소식 하나를 전해드려야 하겠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말씀은 있어요.
야고보서 4장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이구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성경에 보시면 우리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는커녕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나 마찬가지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에게는 사실 이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아니, 이는 단순한 제 느낌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보면 오히려
그렇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보니까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교회에서 자기를 잘 챙겨주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는데 왜 자기를 홀대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이 말은 유독 한국 사람들 만이 좋아합니다.
일본에서나 미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도 그렇겠지요.
성경에도 없는 말을 아마도 한국 교회에서 만들어낸 것일 테니까요.
도대체 이런 엉터리 말을 누가 처음 지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름 이 말씀이 성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게 어디냐 하면 마태복음 16장 26절 말씀이에요.
마태복음 16장 2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 말씀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뜻이다? 이는 아주 기초적인 독해력에 문제가 있는 해석입니다.
이를 현대인의 성경판에서 보시겠습니다.
현대인의 성경판 마태복음 16장 26절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사람이 자기 생명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여기서의 핵심은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가 아니라,
“자기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라고 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기 자신은 소중하지요. 얼마나 아낍니까. 자신의 것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만큼도
밑지지 않으려고 해요.
하지만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멸망을 하든 지옥에 떨어지든 저주를 받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마지막 심판 날에는 어떻게 하신다고 하세요?
마태복음 3장 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태복음 16장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알곡은 곳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으나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지옥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어떠십니까. 그래도 아직까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어디에도 그런 말씀을 하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자, 이렇게 보시면 어떻습니까. 참 막막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우리의 영혼을 그저 잠깐 있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이 여기고 계시다잖아요.
그런데요,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앞서 독해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만, 예전에 제가 학생들에게 독해에 대해서 가르칠 때도 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독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접속사가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접속사는 무엇이냐 하면 바로
‘역접’이다, 라고 했습니다.
‘역접’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예, ‘그러나’, ‘하지만’ 같은 것을 들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왜 역접이 중요한가 하면, 독해 문제에 있어서 대표적인 질문이 ‘필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입니다.
말하자면 필자의 주장을 묻는 질문인 것이지요.
보통 독해 문장구성을 보면 처음에는 일반론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역접’, 그러니까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등의 역접이 나오면서, 거기서부터는 필자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주장을 피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성경에서는 우리의 생명이 그저 한낱 안개와 같이 덧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멸망하든 저주를 받든 지옥에 떨어지든 전혀 가슴 아파 하지도 않으십니다.
여기까지가 일반론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다음에 무엇이 나오죠? 예, 그렇습니다. ‘역접’이 나옵니다. 이제부터가 말하자면 본론인 것이지요.
이 시점에서 “그러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생명은 덧없고 하찮은 것에 불과해요. 하지만 여기서 “그러나!”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뒤집힐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뒤바뀐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요한계시록 1장 4절~5절 전반부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규정되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요한계시록 1장 5절 후반부~6절
“5.……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첫째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우리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셋째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나요? 정말 맞습니까?
로마서 5장 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주신 것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주는 아닙니다만 제가 처갓집에 가끔 가게 되면, 얼마나 잘해 주시는지 모릅니다.
제가 또 고기나 회를 좋아한다고 하시면서 갈 때마다 아주 진수성찬을 차려 주십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이제 식사를 맛있게 먹고 집을 나올 때 쯤에는 이런저런 맛있는 반찬이나 음식을 가득 싸 주십니다. 그래서 항상
집을 나설 때면 두 팔이 무거워요.
자, 그렇다면 저희 처갓집에서는 왜 저를 그렇게 챙겨주는 것입니까.
인간적으로 본다면 피 한 방울 안 섞였잖아요. 하지만 저에게 그렇게 잘 해주시는 이유나 무엇이겠습니까.
예, 딱 하나, 제가 그 집 딸내미의 배우자라는 것 뿐입니다. 그 집 딸내미와 제가 결혼했기 때문에 친인척이 되는 것이고, 그 집
딸내미와 결혼했기 때문에 저에게 그렇게 잘 해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제가 제 아내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제 아내를 제가 전혀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면 제가 잘되든 못되든 그 분들이 저에게 무슨
관심이라도 갖겠습니까.
이는 저희 집에서도 마찬가지가 되겠지요.
사실 뭐 저희 집에서 제 아내에게 특별히 해준 것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일본에 있을 때에 보면 저희 부모님이 얼마나 제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챙겨주려고 하고 그러면서 신경을 쓰시는지 모릅니다.
성경에 보시면 예수님이 신랑이고 성도들을 신부라고 기록한 말씀들이 많아요.
고린도후서 11장 2절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신랑으로, 우리의 구주로 모셔 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우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앞에 펼쳐진 책, 우리가 행했던 그 부끄러운 과거가 적힌 그 기록대로, 마치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던져 넣듯이 판결을 내리시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이고 예수님을 우리의 신랑으로 삼게 된다면 사정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마지막 날 심판의 모습에 대해서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형사재판을 할 때 자리배치를 보면 왼쪽에는 검사들의 자리가 있고, 오른쪽에는 변호사들이 앉게 되어 있고, 그리고 가운데 제일 높은
곳에 재판장이 앉아 있습니다.
재판에서 보면 판사가 사건 기록에 대해서 자기들이 먼저 무슨 자료를 만들지 않습니다.
우선 검사가 피고인에 대해서 고발하는 자료를 만들어요.
그렇다면 하늘나라 재판에서 우리를 고발하는 검사는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5장 45절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예, 그렇습니다. 우리를 고발하는 사람은 바로 모세예요. 아니,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모세가 무슨 나쁜 사람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모세라고 한다면 율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검사라고 하는 사람들도 기본적으로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제 친구들 중에서 현직 검사나 또는 검사 출신들이 몇 있는데 다들
괜찮은 인물들이에요.
다만 검사는 법을 어긴 사람에 대해서 이 사람은 이런 법을 어겼고 저런 법을 어겼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재판을
제기하는 사람들인 것이지요.
그 고발하는 사람이 바로 모세, 그러니까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시면 돌아온 탕자에 대한 말씀이 나오지요?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쓰고는 빈털터리로 돌아왔어요.
여기서 그 탕자의 형은 누가복음 15장 30절에서 말하기를 “그 녀석은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놈입니다”라고
그를 고발해요.
마찬가지로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펼쳐진 책, 우리가 행한 일들, 우리가 율법을 얼마나 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어겼는지에
대한 그 부끄러운 기록들이 가득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보시면서 눈살을 찌푸리십니다. 이거 완전히 나쁜 놈이잖아. 그리고는 주저없이 멸망의 판결을 내리시려는 순간,
변호인 석에서 누군가가 손을 드세요. 잠깐만요! 스톱.
그 분이 누구십니까. 그렇죠.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비록 율법을 어긴 죄인이긴 합니다만, 저는 이 사람의 신랑이고 이 사람은 제가 사랑하는 신부입니다.
제가 이 사람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저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이 사람의 죄를 모두 씻어버리고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처럼 간구를 하는 것이지요.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8절~9절
“8.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요한계시록 3장 5절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시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과 우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망설임없이 지옥불에 던져져서 마땅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우리 구주로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셔드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신부라고 시인해 주신다는
예수님의 이 한 마디로 하나님과 우리는 남남이 아니게 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배우자로 맞이하게 된 우리는 하나님과도 아버지와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탕자의 형의 말처럼 그는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의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못난 아들을 문밖으로 내칩니까.
아닙니다.
누가복음 15장 22절~24절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그 죄 많은 탕자에 대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 그 탕자가 아무리 죄가 많고 못났다 하더라도 오직 그가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모든 죄를 다 용서하고는,
자기를 죄인이라 고백하고 자기를 이 집의 품꾼 중 하나로 여겨 달라며 울부짖는 그 아들에게 아버지는 모든 영광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13절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명이나 영혼은 하찮을 뿐입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인생, 우리의 행함으로 인하여 언제든 쭉정이처럼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짐을 당해도 할말 없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예수님,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아 주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우리는 그 순간부터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있어서 다른 길이 없어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살 길은 단 하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의 유일한 길 되시고 완전한 진리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로서 높임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축복, 크고 놀라운 축복과 은혜와 그리고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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