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6회 '더 강하게'의 유혹 - 이루리라교회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9절~42절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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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우리는 지난 주까지 2주에 걸쳐 “더 높이의 유혹”, “더 많이의 유혹”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만, 오늘은 마지막으로 “‘더 강하게’의 유혹”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사람이 강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이요? 사회적 지위요?

물론 그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돈이 없는 사람보다는 돈이 있는 사람이 강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보다는 높은 사람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만들어낸 수수께끼 하나 내볼까요.

여러분, 한 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 돈이 없어도, 사회적 지위가 낮아도, 그리고 몸에 근육이 없어도, 무척이나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과연 무엇이 강한 것일까요.

네. 그것은 바로 자존심입니다. 이 자존심에 있어서는 이 역시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가 없습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자존심이 강하고, 가진 것이 없으면 자존심이 약해요? 여러분, 그런가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자존심이 강한 지 안 강한 지에 대해서는 그런 배경이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자존심을 건드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사나워지는지 몰라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다투지 않는다면 가장 좋은 일이겠습니다만, 설령 다투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절대로 상대방의 자존심은 건드리지 말아야 해요.

왜냐하면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이를 회복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특히나 가까운 사람, 예를 들어서 가족이나 부부간에 있어서 다툼이 생겼을 때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되면 문제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까지도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가 다툼이 생긴다 하더라도 절대로 자존심은 건드리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을 좀 높여주고 싶잖아요?

그렇다면 자존심을 한 번 세워줘 보세요.

그러면요, 돈 한 푼 안 드리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고 자신감을 줄 수가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는 자존심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 것이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성경을 보면 이 자존심을 죽이라는 말씀이 생각보다 많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다시 한 번 보실까요?

마태복음 5장 39절~42절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건 다 그렇다고 쳐요. 자. 누군가가 내 뺨을 때렸어요.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필요하죠.

만약에 내가 누군가로부터 뺨 맞을 짓을 했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글쎄요. 구체적으로 뺨을 맞을 짓이 뭐냐고 물으시면 저도 언뜻 생각이 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만약에 내가 뺨 맞을 짓을 했다고 한다면, 그럼 뭐, 뺨을 맞는다고 해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문맥상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내가 뺨을 맞을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맞았을 때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한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뺨을 맞았어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볼까요? 사람들이 많이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실 주먹으로 맞은 것도 아니에요. 멍도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게 무슨 망신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자존심이 크게 상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그 앞에서 가만히 계시겠어요?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하고 성질이 나겠지요.

이게 이상합니까. 아니요. 지극히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게 지금 쉬운 일입니까.

화를 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때리는 사람한테, 이봐, 차라리 한 대 더 때리라고 다른 쪽도 대라는 말씀이잖아요.

마음이 넓은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같았으면 정말 참을 수 있을까, 글쎄, 제 성격 같아서는, 글쎄……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무슨 지금 인내심 테스트 하시나 할 것 아니에요.

자, 세상에 보시면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뺨을 맞는 경우가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대표적으로는 정치인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뭐, 괜히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면 또 서로 민감해질 수 있으니, 외국 예를 들어볼까요? 한 번 미국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당연히 도지사보다 대통령이 더 중요합니다만, 실제로 미국에 사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자신들의 실생활에 있어서는 대통령보다 도지사, 미국에서는 주지사가 되겠지요. 주지사가 더욱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미국의 주를 본다면 각 주마다 장관들도 있고, 그리고 군대도 있습니다. 거기에 주지사한테는 사면권까지 있다고 하니 그 권한이 웬만한 나라의 대통령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혹시 미국 헐리웃 배우인 아놀드 슈워제네거라고 아십니까. 예, 영화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배우이지요.

2003년,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선거운동기간에는 각지를 돌면서 선거유세를 다니게 되는데, 그날도 연설을 하기 위해서 연단에 오르던 중에 누군가가 그에게 날계란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 계란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등에 명중해서 그가 입고 있던 갈색 재킷은 더럽혀졌지요.

그런데 만약에 그 자리에서 던진 범인을 찾아내고는 그 사람한테 말하기를, “야 이 놈아. 내가 누군지 알아? 나 헐리웃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야.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란 말이야. 너 터미네이터도 못 봤어? 내 힘이 얼마나 센 줄 알아?”

뭐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순간 그의 자존심은 다소 회복되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선거에서 그는 결코 이길 수는 없지 않았겠어요?

그렇다면 실제로 그는 어떻게 했을까요.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계란으로 더럽혀진 윗도리를 벗고 유세를 하게 되었는데, 시종 그는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유세를 마치고 계란을 던진 사람에 대해서 기자들의 질문이 있었는데, 거기에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계란을 던졌으니 이제 베이컨만 던지면 되겠네요.”

이렇게 말을 했다는 것이에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에 베이컨과 계란으로 만들어진, 베이컨 에그가 있는데, 계란만 주면 어떡하냐, 베이컨도 줘야 할 것 아니냐, 하는 유머로 맞받아친 것이지요.

그랬던 그는 이후에 치러진 선거에서 당당히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간혹 성경말씀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말씀이 아닐까 해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슨 큰 것을 바라십니까. 우리더러 무슨 성인군자라도 되라고 하세요?

아니에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뭐예요? 예, 우리는 결코 성인군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거든요.

성경에도 보세요.

창세기 8장 21절 중반부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하지 못하심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한테 무슨 큰 것을 바라시겠습니까.

오늘 말씀도 보시면, 우리가 남들한테 어떤 심한 꼴을 당해도 그냥 참으라고 하세요?

누군가가 나를 이런 몽둥이로 때린다거나 죽이려고 달려든다 해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때리는 것도 뺨을 칠 정도입니다. 그것도 오늘 말씀을 잘 보세요. 너의 오른뺨을 친다고 말씀하시잖아요.

물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누군가로부터 뺨을 맞는다고 한다면 대부분 왼쪽을 맞습니다.

이건 뭐, 하나하나 물어볼 필요도 없어요. 적게 잡아도 90% 이상은 왼쪽을 맞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해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이지요.

오른손잡이인 사람이 상대방의 뺨을 때리게 된다면 일반적으로 어느 쪽 뺨을 때리게 되겠습니까.

아니, 그렇다고 실제로 해보시지는 마시고요. 한 번 머리로 생각해보세요.

그래도 도무지 모르시겠다고 하시는 분은, 인형을 앞에 놓고 해보세요.

오른손으로 뺨을 때리게 된다면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왼쪽 뺨을 때리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른쪽 뺨을 맞았을 경우에 대해서 말씀을 하세요.

자, 상대방이 여러분의 오른뺨을 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두 경우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는 왼손으로 때렸을 경우, 또 하나는 오른손을 쓰되 손등으로 때렸을 경우입니다.

왼손으로 뺨을 때린 경우는 알기 쉽겠지요. 내가 왼손으로 상대방의 뺨을 때리면 상대방은 오른쪽 뺨을 맞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른손으로 때리되 손등으로 때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른손 손등으로 상대방의 뺨을 때리게 된다면 역시 상대방의 오른쪽 뺨을 때리게 되겠지요.

자, 이 경우를 본다면요, 여기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일단 뺨을 맞는다는 것은 대단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둘째로는 그리 통증이 심하지 않다는 공통점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른손으로 왼쪽 뺨을 때린다면 아프기도 많이 아프겠지만, 왼손으로 때린다거나 오른손 손등으로 때린다고 한다면 생각만큼 힘이 잘 들어가지는 않거든요.

아까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그렇다고 실제로 해보지는 마세요.

그러니까 오른쪽 뺨을 맞았다는 것은, 내가 부상을 입거나 피가 날 정도는 아니에요.

다만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치 계란을 맞은 것도 비슷하지 않겠어요. 얼굴도 아니고 등에 날계란을 맞은 정도인데, 그것도 더구나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워제네거 정도인 사람이 달걀 몇 개 맞는다고 끄떡이나 하겠습니까.

다만 기분은 대단히 안 좋을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그의 모습을 보니 어떻습니까.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계란을 던지거든 베이컨도 던지라고 해라.”

이렇게 보면 그가 보여준 행동은 성경말씀과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가 계란을 맞고서도 태연하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그의 자존심이 상했다고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 대한 평가는 훨씬 더 높여졌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와 같은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이지요.

다음 구절이 뭐죠?

마태복음 5장 40절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만약에 누군가가 나한테서 전재산을 빼앗으려고 해요. 아니면 무슨 집이나 자동차 같은 비싼 물건을 가져가려고 재판을 일으켰어요.

그래도 주님은 그걸 다 주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지금 입고 있는 헌옷, 그것도 빤쓰나 런닝 같은 헌옷이라고 한다면 그 값어치가 얼마나 나가겠습니까.

그래도 그걸 나한테서 빼앗으려고 재판까지 하면서 달려든다면, 차라리 맞받아치지 말고 그냥 너 안 입는 겉옷 있지? 그것까지도 덤으로 줘버려라.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다음 말씀도 보실까요?

마태복음 5장 41절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자, 이 말씀도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요즘도 아직 그런 회사 있겠지요? 무슨 악덕기업주 같은 사람이 돈도 안 주면서 강제로 일을 시키거나 한다면, 여기에 대해서도 그저 참고, 돈을 못 받더라도 시키는 대로 무슨 일이든지 다 하라는 말씀이에요? 아닙니다.

여기서 자세히 보시면 ‘동행’이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이를 쉽게 본다면, 일을 시키는 사람이 자기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일을 1시간 정도 자기와 같이 하자고 시켰다면, 도와주는 셈 치고 그냥 2시간 정도 함께 해주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42절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 말씀은 무조건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한테 거절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문맥상으로 본다면 어떻습니까. 앞서 자신의 속옷에 대한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 정도의 값어치가 되는 돈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지요.

금액에 있어서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얼마라고까지는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만, 나한테 있어서 마치 중고 속옷과도 같은 값어치, 그야말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정도 되는 돈이지만 상대방이 간절하게 구할 때에는 거절하지 말라고 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절은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면 무조건 손해보면서 살아라? 주님은 정말 그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일까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앞서 선거운동 기간에 계란을 맞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손해를 봤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잖아요.

그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인내함으로 인해서 더욱 큰 것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요한3서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맨날 힘들어하고, 맨날 손해만 보고, 맨날 괴로워하고 하는 그런 삶을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믿고 우리의 영혼이 잘 되어서 구원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살아 가면서 모든 일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고도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시편 2편 8절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갈라디아서 4장 7절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그리고 또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렇습니다. 믿음 안에 있어서 우리의 인생은 그저 이슬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허무한 인생이 아닌, 우리의 발걸음은 우리를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받으러 가는 길,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는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는 대관식에 참여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왕이 되기 위한 대관식에 가고 있는데, 말하자면 대통령 당선증을 받으러 가는 길, 대통령 취임식에 가고 있는 길인데, 별로 아프지도 않은 뺨 한대 맞아서 자존심이 상했다고 하면서 멱살 잡고 달려 들겠습니까.

내가 지금 입고 있는 빤스나 런닝 정도 되는 것을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사람한테 그것 하나 안 빼앗기려고 혈안이 되어서 싸우시겠습니까.

친구가 지금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마트에서 빵이랑 우유를 살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그것 하나 꾸어 주지 못하겠습니까.

그런 데에 지체할 새가 없어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실 면류관을 들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지금 그런 데에 시간을 허비하시겠습니까.

취임식이 시작하고 나에게 줄 대통령 당선증을 들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늦어서 못가시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누가복음 10장 42절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우리의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유업을 물려 받는 대관식을 향한 발걸음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구원도 받고 우리의 자존심도 살리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면류관을 받는 대관식입니까. 아니면 내 자존심입니까.

사탄은 격동합니다. 야, 면류관이 뭐가 중요해. 대관식이 뭐가 중요해. 너,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면 속상하지 않니? 어서 빨리 복수해. 당장 그 자리에서 속 시원하게 때려눕혀 버리란 말이야.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우리에게 약속된 영광을 버려버리시겠습니까.

마태복음 25장 11절~12절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 순간을 못 참아 내 자존심 살릴 것 다 살리고 헐레벌떡 도착했더니 이미 문이 닫혔어요.

제발 문을 열어 달라고 두들겼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또 이런 말씀도 있지요.

누가복음 14장 8절~10절
“8.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합니까.

너희들은 항상 저기 구석 끝자리에 앉으라는 말씀이에요?

아니에요. 처음부터 자기 자존심을 세우려고 높은 자리에 가서 앉지 말고 차라리 끝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더러 맨날 손해보면서 비굴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높이기보다 오히려 스스로 낮추는 것이 더 큰 영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더러 손해보고 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비굴하게 살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세요.

그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좋은 편을 택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좋은 편을 택하는 것. 그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좁은 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많은 사람들은 좋은 편을 택하지 못합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내 자존심을 택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조금 자존심이 상하게 되면 “뭐, 어째고 어째?” 하고 달려들어요.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그렇습니다. 바로 멸망에 이르고 마는 것이지요.

여러분, 아무리 마귀가 내 귀에 대고, 너의 자존심을 더 강하게 하라고 유혹을 하더라도 거기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훨씬 더 좋은 편을 택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범사에 우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주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편을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주님으로부터 의의 면류관, 영광된 면류관을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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