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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지난 주에는 “더 높이의 유혹”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만,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더 많이’의 유혹”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이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지요.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역대상 21장에 보시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명령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무엘하 24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오늘은 역대상 21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정기적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자기 나라의 규모, 분포, 구조 및 주택에 관한 특성을 파악함으로 인해서, 이에 따르는 각종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로
삼기 위한 통계 조사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다윗도 왕으로서 그와 같은 자료가 필요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인구조사를 명했다고 생각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21장을 보시면 1절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역대상 21장 1절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이 기록에 의하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실시한 것은 사탄이 충동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사탄이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조사를 하도록 했다는 것이지요.
아니, 왜 사탄이 인구조사를 시켰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지 않게 의문이 남을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일단 본문을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역대상 21장 2절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여기에 요압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는 당시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 왕에 이어 실질적인 제2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요압에게 인구조사를 명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요압은 이 명령에 대해서 다윗에게 직언을 드립니다.
역대상 21장 3절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이 말을 보면 요압 장군은 다윗 왕의 명령에 대해서 이는 옳지 않다고 반발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 일단 여기까지 정리를 해볼까요.
다윗이 총사령관 요압 장군을 비롯해서 각 지도자들에게 인구조사를 명령하고는 그 결과를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사탄이 충동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여기에 대해서 왜 사탄이 이런 일을 하게 했는지, 이것이 어디에 그처럼 악한 부분이 있었는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지금 이 단계까지를 본다면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설명하지는 않고 있지요.
그러자 요압 장군이 이 명령에 대해서 반발을 합니다.
어느 회사 같은 데에서도 사장이 무언가를 하라고 하는데, 부하 직원으로서 이를 거부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하물며 왕이 명령을 내리고 있는데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게 된다면 이는 거의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요압이라고 하는 장군이 전쟁에 있어서의 능력은 뛰어났을 지는 모르지만, 신앙적으로는 그렇게 신실한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왕의 명령에 대해서 반박을 했다는 것은, 이는 신앙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세상적으로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 않았을까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직언을 올려도 다윗 왕이 그 뜻을 굽히지 않으니까 어쩌겠습니까. 일단 인구조사 업무에 착수는 합니다.
역대상 21장 4절~6절
“4.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5.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6.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압 장군은 다윗에게 인구조사 결과를 보고하게 되는데, 그런데 이 부분에 보시면 흥미로운 점들이 있어요.
우선 보고하는 내용을 본다면 어떻습니까.
요압 장군이 보고한 내용을 본다면 첫째로 전체 인구가 아닌 칼을 뺄 만한 자에 대한 숫자를 보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요압은 레위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예 계수조차 안 했다고 하지요?
이를 바탕으로 본다면 이번에 인구조사를 한 이유는 명확해 집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자기 나라의 국력, 더 구체적으로는 군사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 등장하는 요압 장군은 전쟁 때 싸움도 잘했습니다만, 세상적으로도 머리가 대단히 비상한 사람입니다.
정말 언제 여유가 있으면, 이 요압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 등장인물 중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보고 싶은 인물 중 하나예요.
그와 같은 요압 장군이 레위와 베냐민 지파를 계수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다윗의 명령에 대해서 못 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단순히 귀찮아서 그냥 생략해버렸을 뿐인가 하면, 아니에요.
여기에는 더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 이후 몇 번의 인구조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민수기 1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장 49절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라고 하세요.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장 50절~53절
“50.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51.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52.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53.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출애굽 당시 인구를 계수하는 목적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지파 중에서 특별히 레위 지파 사람들은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서, 전쟁에서는
말하자면 열외가 된 것이지요.
다음으로 베냐민 지파에 대해서 본다는 이 베냐민 지파는 본래부터 수가 적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19장 이하에 의하면,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열한 지파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베냐민 지파 수가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할 정도로 급감하게 되지요.
그래서 사무엘상에 보시면 선지자 사무엘이 사울에게 장차 왕이 될 것을 말하자 베냐민 지파인 사울은 뭐라고 말합니까.
사무엘상 9장 21절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사울이 말하기를 자기가 속한 베냐민 지파는 제일 작은 지파라고 하잖아요.
그러니 사울이 죽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사이에 베냐민 사람들의 수가 늘면 얼마나 늘었겠어요.
그러니까 본래부터 다윗의 이번 명령을 못 마땅하게 여겼던 요압은 부하들에게 이렇게 시킨 것이 아닐까 해요.
“야, 이번에 왕이 명령을 한 이유는 자기 힘을 과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싸움에도 나가지 못할 레위 지파 사람들 수는
관심도 없어. 그리고 숫자도 얼마 안 되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도 괜히 귀찮게 계수하지 않아도 돼.”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해요. 성경 전체로 보았을 때 요압 장군이라면 분명 그렇게 말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이제 인구조사 결과를 다윗에게 보고를 했더니만 그제서야 자신이 저지른 죄를 깨닫습니다.
역대상 21장 8절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징계를 내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형벌은 무엇인가 하면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빼앗는 것이라고 해요.
그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한테서 돈을 빼앗는 것이 가장 큰 형벌이 될 것이요, 명예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명예를 빼앗는 것이 가장 가혹한 형벌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다윗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겠습니까. 그것은 이번 인구조사를 시킨 이유를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잖아요.
그것은 바로 자기 나라의 인구 수를 마치 자기 힘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하셨어요? 그렇죠. 그 백성들을 치셨던 것이지요. 그것도 14절에 의하면 7만명이나 죽이셨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참혹한 심판입니까.
다윗은 이 일로 인하여 뼈저린 반성과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는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줍니다.
역대상 23장에서는 다윗이 또다시 인구조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를 보시면 대단히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역대상 23장 1절~5절
“1.다윗이 나이가 많아 늙으매 아들 솔로몬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2.이스라엘 모든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았더라
3.레위 사람은 삼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니 모든 남자의 수가 삼만 팔천 명인데
4.그 중의 이만 사천 명은 여호와의 성전의 일을 보살피는 자요 육천 명은 관원과 재판관이요
5.사천 명은 문지기요 사천 명은 그가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이라”
이것을 보십시오. 놀랍지 않습니까. 앞서 제가 레위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그 사람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성막을
관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전쟁이 나도 싸움에 나가지 않아요. 말하자면 국방력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처음에 레위 지파 사람들의 수에 대해서 아예 관심도 없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요압 장군은 아예 계수조차 안
했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다윗도 레위 지파 사람들의 수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다시 인구조사를 할 때에는 어때요.
이제 전쟁을 할 사람들, 자신의 힘을 과시할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 지파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계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말씀인 야고보서를 한 번 볼까요.
야고보서 1장 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말씀을 한 번 뒤에서부터 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사망을 피하려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사망을 낳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죄를 낳으면 안 되겠지요.
그러면 죄를 낳지 않기 위해서는 욕심을 잉태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볼까 해요. 도대체 사람들은 왜 욕심을 갖는 것일까요.
욕심을 갖지 않으면 죄를 지을 필요도 없고 죄를 짓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갖게 되니까 결국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기억합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헤어져 소돔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만, 그곳은 죄악에 물든 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는데 그 곳에 살고 있는 롯을 구하시려고 해요.
그 이유는 롯이 무슨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기록하고 계세요.
창세기 19장 29절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을 구해 내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롯과 그의 가족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창세기 19장 17절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여기서 도망갈 때에 돌아보거나 머물지 말고 산으로 가라고 하지요.
다른 가족들은 이를 지키고 산을 향해 달려 가는데, 누가 돌아보아요? 예, 롯의 아내가 돌아봅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창세기 19장 26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여기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고 계세요.
누가복음 17장 28절~32절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롯의 처를 기억하라”
그렇다면 롯의 아내는 왜 뒤를 돌아보았던 것일까요. 욕심 때문에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저는 욕심 이전에 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욕심을 품게 되는 원인. 성경적으로 본다면 욕심의 근원은 바로
‘미련’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으로 들어갈 때, 그는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내를 만난 것은 소돔에서였겠지요.
롯의 아내에 자세한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만 아마도 그녀는 소돔에서 태어나 자라지 않았을까 합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지고 그 목적지를 소돔으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창세기 13장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 지역에 너무나도 풍요로워 보여서, 그야말로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롯의 아내는 그와 같은 풍족한 도시에서
태어나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은 곳에서 자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버려야 해요. 재산만이 아니라 모든 추억도 다 놓고 떠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소돔이 눈에 밟혀요. 어차피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죠. 바로 미련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와 같은 때, 다시 말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이 미련을 버리라는 말씀을 단호하게 하십니다.
미련이 있기 때문에 욕심이 생기고 욕심을 채우려니 죄를 짓게 되고, 죄를 지으니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미련을 가지고 “더 많이, 더 많이” 하면서 혈안이 되어서 긁어 모으고 있는 사람을 보고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신다고 해요?
누가복음 12장 20절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만 년 살 것처럼 돈을 벌고 재산을 모은다 하더라도, 얼마 후면 다 버리고 떠나야 할 때가 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요한계시록 20장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그러면 장차 주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얼마나 돈을 벌고 재산을 모았는지에 따라 상을 받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것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겼는지에 따라 상을 받게 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이 젊었을 때의 미련이나 욕심이나 과시욕을 다 버리고 이제 레위 지파 사람들을 계수하여 하나님 섬기는 일에 마음을 기울였을
때, 그 후대의 솔로몬 왕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 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은 우리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으로 주님을 섬기는 데에 사용할 때에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축복을 부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는 비단 돈이나 재산 만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이면 건강, 시간이면 시간,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얼마든지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더 많이”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많이” 섬기고 이웃을 “더 많이” 섬김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부어 주시는 축복과 은혜를 넘치도록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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