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6회 [면류관 강해 제16회] 예수님의 십자가와 우리의 십자가 (1) - 이루리라교회 홍성필 목사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교회
www.이루리라.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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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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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면류관 강해 16번째 시간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우리의 십자가 (1)”이라는 제목으로 해서 이번주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그리고 다음 주는 ‘우리의 십자가’, 이렇게 두 번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 오늘도 면류관 강해의 핵심구절인 요한계시록 3장 11절을 함께 읽고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아멘.

세상에 보면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사람들도 많이 계시지만 반면에 비판과 비난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는 것 같아 좀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람들이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지요.

 
예전에 제가 보니까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개역개정 성경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성경은 개역한글, 그러니까 ‘가라사대’ 식으로 되어 있는 성경 있잖아요. 이걸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그 비싸다는 신문광고까지 내면서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요, 그런 광고까지 할 돈이 있다면 차라리 다른 쪽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기도 합니다만, 뭐 그것 만이 아니지요. 다른 성경은 잘못되고 자신들이 사용하는 성경만을 써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자면 한글성경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공인된 기관에서 나온 성경이라면 무슨 성경을 쓰든 큰 문제는 없습니다.

성경에 있어서 대표적인 기관이라고 한다면 대한성서공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나오는 성경은 개역개정이나 개역한글은 물론이고 새번역, 공동번역 등 다양한 성경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어떤 성경을 읽으면 구원을 받고 어떤 성경은 읽으면 안 되고 그런 것은 없어요.

 
다만 그 교단이나 교회마다 채택하고 있는 성경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속해 대한예수교 장로회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이 개역개정 성경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기본적으로는 개역개정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도 종종 참고를 하고 있어요.

영어성경의 경우에는 KJV라고도 하는 킹제임스버전이지요? 뿐만 아니라 NASB 성경도 있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성경인 NIV도 다 좋은 성경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일본어는 좀 오래된 버전은 구어역이나 신개역3판이 있습니다만, 요즘은 대부분 신개역2019 성경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이것은 안 되고 저것을 잘못되고 하는 그와 같은 지적은 가급적 좀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보니까 좀 걸리는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이것은 찬송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찬송은 사실 노래로 드리는 기도라고 하잖아요?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할지 모를 때 찬양을 드리면 그것 만으로도 은혜로운 기도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정말 맞는 말씀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도 한 번 개정이 된 것이잖아요? 그런데 개정되기 전의 찬송가를 보면 옛날 찬송가 116장 제목이 ‘동방박사 세 사람’이었거든요.

“동방박사 세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 왔도다”

하지만 성경에 자세히 보시면 알 수 있듯이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세 가지 예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는 기록이 있을 뿐, 그들이 세 사람이었다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거든요. 그래서 이 찬송이 좀 마음에 걸렸었는데, 2007년인가에 개정이 되면서 제목이 ‘동방박사 세 사람’에서 ‘동방에서 박사들’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지금 새찬송가 116장은

“동방에서 박사들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 왔도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동방박사가 한 사람이면 어떻고 세사람이나 열 사람이면 또 어떻습니까.

우리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이 점은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얼마 전에 새벽예배에서 찬양을 드리는데 말이에요. 제가 그 동안, 공부부족 탓에 몰랐던 부분이 또 있더라고요. 이는 1절이 아니라서 그 동안 놓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어디냐 하면 새찬송가 216장이고 제목은 “성자의 귀한 몸”입니다.

 
1, 2절은 괜찮았습니다만, 제가 걸린 가사는 3절이에요. 여러분께서는 어떠신지 한 번 들어보세요.

새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 3절 가사입니다.

“3.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 나 베풀게 하옵소서”

새찬송가는 216장이고 옛 찬송가는 356장입니다만 제목도 같고 특별히 3절 가사는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가사를 들으시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 나 베풀게 하옵소서”

사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이 찬양을 듣고 은혜롭게 여겨왔기 때문에 개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가 그대로 유지되어 온 것으로 여겨집니다만, 저는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 적지 않게 좀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게 어디라고 생각되십니까.

 
다시 한 번 읽어드릴게요.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 나 베풀게 하옵소서”

제가 걸렸던 부분은 어디냐 하면 바로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라는 부분이에요.

여러분, 성경에 보시면 주님께서는 자신이 지시는 십자가를 우리도 지라고 말씀하셨나요?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외에도, 같은 공관복음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이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 말씀부터 다시 한 번 보실까요?

마가복음 8장 34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다음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장 23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성경에 보시면, 주님께서는 우리더러 주님의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일관되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다시 말해서, 너희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와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무엇이 다른 지를 살펴 보아야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대속의 십자가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5절
“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형벌을 받아 주셨고, 이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면 어떻게 됩니까. 제가 만약에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누군가의 죄가 사해지나요?

아니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저 또한 죄인이기 때문인 것이지요.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형벌을 받겠습니다, 라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봐, 너도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받아야 할 형벌이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그 누구도 대신 질 수 없는, 오로지 죄가 없는 예수님 만이 지실 수 있는 십자가였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8절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자 하나님의 본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렇지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예수님은 왜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 그냥 하늘에서 내려오시면 되잖아요. 왜 굳이 번거롭게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냐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마리아, 아니,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셔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셔야 했던 첫번째 이유는, 성경에 그와 같은 예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는 메시아가 태어날 징조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예언이나 징조가 없었다면 너도나도 자기가 메시아라고 우기지 않겠습니까.

요즘도 보십시오. 21세기를 사는 지금도 자기가 예수다 메시아다 선지자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그런 사람들은 옛날에도 있었어요.

 
사도행전 5장 36절~37절
“36.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예수님 때에도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은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확실한 징조가 필요했던 것인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사야서의 예언이었던 것이지요.

 
이 예언대로 오시게 된다면 누구도 그 분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예언의 말씀처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셔야 했던 두번째 이유는 뭐냐 하면,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에는 사람으로 오셨어야 했어요.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어야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기 때문인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관하여 대단히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율법과 다른 것을 전한다고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다른 것을 전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한 율법을 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 딱한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이 그 동안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이 율법과 다르다는 식으로 그렇게 들렸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율법에서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야고보서 2장 10절~11절
“10.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율법에 있어서 죄인이 되면 그 대가는 사망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있어서 하나를 어긴다면 모든 것을 어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땅에서 어느 누가 율법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자, 죄인이 죄에서 놓임을 받기 위해서는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형벌은 사망이라고 하잖아요.

우리의 죄는 율법적으로 보았을 때 죽음 외에 달리 죄값을 치를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누구는 그런 생각을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우리도 십자가에 달리면 우리의 죄값을 치르게 되는 거니까 용서함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예수님 믿을 필요도 없이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겠네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우리 스스로가 십자가에 달려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죽음이 곧 우리의 죄사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의 감옥을 생각해보세요.

가령 징역형을 선고 받았을 경우 1년이면 1년 10년이면 10년, 그 기간이 다 차면 나올 수가 있습니다. 하물며 무기수라 하더라도 시간은 좀 걸리지만 모범수로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하게 되면 가석방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이 있어요.

 
하지만 사형수는 어떤가 하면, 사형수에게는 가석방이 없습니다.

아무리 수감생활을 잘 한다 하더라도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재심청구를 해서 감형이나 무죄 판결을 받는게 아니라면, 사형이 집행된 다음에 싸늘한 주검으로 나오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재심청구는 재판이라는 것이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 여러 사정으로 재판을 다시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만,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는 재심청구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의 심판은 완벽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진정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이 가두어 놓은 감옥에서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죽는다고 하는 것은 이는 구원이 아닙니다. 멸망인 것이지요.

따라서 결과적으로 본다면 우리 스스로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죽음으로는 이웃은 물론이고 나 스스로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어요.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율법이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감옥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아무런 흠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를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오시면 율법의 심판을 받으실 수가 없어요.

율법의 형벌은 죽음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인 상태로 오시면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아 주실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시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오히려 예수님께 있어서는 그것이 더 쉬웠을 것입니다. 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이제부터 무효다. 없어.

이렇게 하셨다면 어떻게 됩니까.

예, 그렇죠. 율법이 없어졌으니 죄도 없게 되고, 죄가 없으니 심판도 없게 되고, 심판이 없으니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실 필요가? 예, 없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입장에서만 본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도 없게 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율법을 없애 버리시는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을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으실 수 있는 몸, 다시 말해서 죽으실 수 있는 몸, 바로 사람의 몸으로 오실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셔야 했던 세번째 이유는, 바로 요셉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만 그들의 자녀들, 가인이나 아벨, 그리고 셋 이후의 모든 인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이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태어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잖아요.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는 하나, 만약에 사람 만의 몸으로 오셨다고 한다면 우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와 똑 같은 사람으로서 오셨다면 우리의 죄를 해결하실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비록 죽으실 수 있는 몸으로 오셨으나,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사람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예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비율은 50대 50인가요?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사람으로도 불완전하시고 하나님으로도 불완전 하다는 말씀이 되고 말지 않습니까.

이게 사실이라면 불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불완전한 사람으로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고 한다면 우리의 죄는 완전하게 용서받지 못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 이를 완전하게 이루시기 위해서,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완전하게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완전하게 용서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는 그 누구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시는 십자가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가 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성자 하나님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셔야지만 하실 수가 있는, 말하자면 예수님 만이 짊어지실 수 있는 십자가인 것이지요.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라는 새찬송가 216장 3절 가사가 제 마음에 안 걸리겠냐 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주는 이제 우리의 십자가,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에 대해서 알아볼 예정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성경 중에서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 성경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구원도 죄사함도 깨달을 수가 없어요.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은 신구약을 불문하고 성경 전체를 깨닫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이제 특별히 이 기간을 통해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더욱 깊이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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