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4회 세례 요한이 두 제자들을 보냈던 이유 - 이루리라교회 홍성필 목사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17절~23절
“17.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8.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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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세례 요한이 두 제자들을 보냈던 이유”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까지는 14회에 걸쳐 면류관 강해를 해왔습니다만, 오늘은 잠시 쉬고, 그 대신 세례 요한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선 세례 요한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기에 앞서 사역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헤롯에 의해 잡히게 되고 맙니다.

세례 요한은 이미 예수님께 관하여 말한 바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

그가 말한 바와 갈이 세례 요한은 옥에 갇힌 상태에 있었으나 한편으로 예수님의 사역은 나날이 왕성해지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오늘 본문 중에서 우선 17절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7장 17절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보다 앞서 누가복음 7장 1절부터 16절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가 하면, 우선 2절에서 10절까지 보면 백부장의 종을 치료해 주시는데, 예수님께서는 직접 보지도 않으시고 말씀 만으로 고치셨지요.

그리고 11절부터 16절까지는 이미 사망한 과부의 독자를 살리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의 이와 같은 놀라운 소식은 순식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지요.

오늘 본문 18절에 의하면 요한의 제자들이 이와 같은 소식을 당시 옥에 갇혀 있던 세례 요한에게 알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 중 둘을 불러서 말하기를 예수님께로 가서는 “오시기로 된 분이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여쭤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이 예수님께로 갔더니만, 마침 그 때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시는 사역을 하고 계셨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스승인 세례 요한이 시킨 대로 예수님께 질문을 드리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22절~23절이지요?

누가복음 7장 22절~23절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라고 하셨다는 것이지요.

자, 그러면 이제 여기까지의 내용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서 “오시기로 된 분이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게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예전에도 말씀 드렸지요? 구약과 신약에서 구약, 오래된 약속과 신약 새로운 약속은 무슨 의미라고 했습니까.

구약, 오래된 약속은 메시야가 오신다는 약속이고, 신약 새로운 약속은 메시야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라고 했었잖아요.

구약에 보시면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말라기까지 반복해서 메시야가 오신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예수님한테 가서 그 오신다는 분이 당신인지 아닌지를 물어보라고 시켰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지요.

옥에 갇혀 있던 세례 요한은 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성경에 오신다고 예언된 분이 당신인지 아닌지 물으라고 했던 것일까요.

 
이 점에 대해서 현재 신학적으로는 압도적인 다수의견이 뭐냐 하면,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의심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세례 요한은 막판에 가서 오시기로 되어 있던 메시야가 예수님이신지 아닌지를 의심하게 되었다고 하는 주장이에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주석서에 적힌 내용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저는 보통 두 종류의 주석서를 참고하는데, 하나는 외국에서 나온 책이고 또 하나는 한국에서 나온 책이에요.

 
우선 외국에서 나온 주석서에 적힌 내용부터 읽어드릴까요?

“만일 예수께서 진실로 메시야라면 왜 요한을 헤롯의 손에서 풀어주는데 그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셨을까. 그래서 요한은 제자 중 둘을 예수께로 보내어 그분이 진실로 그 메시야인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는지를 묻게 했다. 요한이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의심했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잠시 믿음이 떨어지는 연약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신체적인 고통이 극심한 정신적인 압박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리고 국내 주석서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랜 옥살이에 지쳐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 의심이 일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요한이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한 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마도 그가 그 당시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즉 시간이 갈수록 요한은 감옥에 갇혀 마음이 조급해진 반면 메시야로부터는 어떤 격려의 메시지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예수의 제자와 요한의 제자들 간의 경쟁의식에서, 예수의 명성이 높아가자 요한의 제자들이 질투심을 느낀데 그 원인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된 원인은 예수가 그 당시 흔히 이해되고 있었던 민족적 차원의 메시야 사역을 충족시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적어도 예수가 오실 메시야라면 엘리야와 같은 메시야적 표징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보여야만 하지 않는가 라는 강한 의구심을 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예수의 행위가 메시야로서는 합당치 않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자, 여러분께서는 지금 말씀 드린 내용을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도 얼마 전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세례 요한 정도 되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역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배웠고 들어왔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요.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어떤 분과 세례 요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내용은 ‘세례 요한의 의심’이라는 제목으로 다루어 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분은 아예 ‘세례 요한의 실족’이라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에 실족함으로 인해서 배교 즉 신앙을 버리게 되었다고까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더군요.

저는 여기에 대해서 그 분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에 2천년 전에 직접 뵈었더라면 예수님을 구주로 알아 보았을 지 의문이다.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했던 이유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아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일말의 의심을 가졌다는 것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문제이다.

저는 그 때 이렇게 말을 했었습니다만, 그러나,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제 머리속에는 어떤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는가 하면, 제 말이 저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제 입으로는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점에 대해서 세례 요한이 의심했을 수도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제 머리속으로는 “세례 요한이 의심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는 오랫동안 제 안에 있었던 생각입니다.

지금껏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들어왔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습니다만, 그런데 정말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았더니,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독생자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는 삼일 만에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믿어지는데,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어딘가가 걸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도대체 어느 부분이 걸려서 이 점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을까 하고 며칠 동안 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성경을 찾아보았는데, 그러자 제 예상은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아하, 여기가 걸렸었구나, 그래서 내가 계속 수긍할 수가 없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지요.

우선 결론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여부에 대해서 단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다름아닌 성경을 통해서 확실하게 검증할 수가 있다고 자신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두 가지로 들 수 있겠습니다.

그 근거 중에서 하나는 소극적인 근거이고 또 하나는 적극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소극적인 근거부터 본다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했다거나 믿음이 떨어졌다거나, 하물며 옥살이에 지쳤다거나 하는 기록이 성경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가 있습니다.

아까 제가 읽어드린 세례 요한이 의심을 했다는 주석서 내용은 단지 신학자들의 상상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상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 이는 단순합니다.

 
세례 요한이 제자들 둘을 시켜서 예수님께 보내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질문하도록 시켰다는 것, 이것 하나만을 근거로 해서 지어낸, 말하자면 신학자들의 소설인 것이지요.

다음으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한 것이 아니라는 적극적인 근거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실 저는 바로 이 점이 걸려서 말하자면 “세례 요한의 의심설”을 수긍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 질문을 하고 돌아간 다음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자, 만약에 정말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가졌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제자들을 보냈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세례 요한에게 뭐라고 하셨어야 할 것 같습니까.

아니, 단순하게 생각해보세요.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했다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 칭찬을 하셨겠습니까. 아니면 꾸짖으셨겠습니까. 당연히 꾸짖으셨겠지요.

성경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도 믿음이 흔들린 사람들에게 자주 꾸짖으셨잖아요.

 
마태복음 14장 31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태복음 16장 8절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마태복음 17장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8장 50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엄하게 꾸짖으시고는 그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왔을 때, 만약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었다면 이처럼 꾸짖으셔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래, 세례 요한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오늘 본문 다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7장 24절~28절
“24.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26.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27.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는 선지자보다도 훌륭하다고 하시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세요.

 
27절 말씀은 어떻습니까.

누가복음 7장 27절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이는 말라기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말라기 3장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세례 요한은 구약에서 예언 된 대로 온 인물이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디 그 뿐인가요.

말라기에는 또한 다음 구절도 있지요.

말라기 4장 5절~6절
“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시기 전에 엘리야를 먼저 보내시겠다고 구약에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7장 10절~13절
“10.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이는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보다 먼저 엘리야를 보내시겠다고 했는데, 그 인물이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잖아요.

누가복음에 보시면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 전에 천사가 나타나서 그가 태어날 것을 알리고 요한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대단히 놀라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성경에 보시면 이와 같은 일은 사실 종종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 대해서도 그랬고, 삼손이나 솔로몬 등 몇몇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명문상으로 선지자에 의한 기록으로 예언된 사람이 태어난 경우는 누가 있을까요.

이는 놀랍게도 예수님을 제외한다면 세례 요한 뿐입니다. 세례 요한에 대한 예언은 말라기 만이 아니라 이사야 40장에서에서도 등장할 정도로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베드로다 바울이다 하더라도 그 출생이 성경에 예언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성경에 예언된 인물이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세례 요한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알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와 같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마가복음 1장 7절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요한복음 1장 29절~34절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그리고 세례 요한은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직접 세례를 베풀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마태복음 3장 13절~15절
“13.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이와 같은 인물이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보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옥에 갇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의심했다는 말이 믿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예수님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후에 그에 대해서 극찬을 하십니다.

이와 같은 기록은 누가복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1장에 보더라도 세례 요한의 제자가 돌아간 다음에 역시 세례 요한을 높이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에 이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한다면 어땠겠습니까.

기껏 칭찬해 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의심을 하네? 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어유?

하지만 혹여 그럴까봐 성경에는 안전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칭찬하시는 구절을 보면 어떻게 시작합니까.

누가복음 7장 24절 전반부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마태복음 11장 7절 전반부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이 기록을 보십시오. 이 시간 순서는 흔들림이 없어요. 분명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다음에 예수님은 그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 기록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두 다 무시한 채, 세례 요한이 의심을 했다는 둥 실족을 했다는 둥 하는, 신학자들이 자기 멋대로 지어낸 소설을 믿어라?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와 같은 사실을 근거로 본다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절대 의심을 하거나 하물며 실족을 했다고는 볼 수가 없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지요. 세례 요한은 왜 두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냈던 것일까요.

제가 내린 결론,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바탕으로 해서 성경 기록에 맞도록 흐름을 재구성해보도록 해보겠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 중 두 구절을 검토하겠습니다.

누가복음 7장 17절~18절
“17.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8.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실제로 목격했습니까? 아니요.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17절에 등장한 ‘이 소문’이라는 말과 18절에 나오는 ‘이 모든 일’은 사실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17절에 등장하는 ‘이 소문’은 앞서 나오는 백부장의 종을 고치시고 과부의 독자를 살리셨다고 하는 소문’을 가리키는 말이고, 뒤에 나오는 ‘이 모든 일’은 ‘이 소문의 모든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자들은 백부장의 종을 고치고 과부의 독자를 살리셨다는 예수님의 역사를 직접 보고 그 사실을 요한에게 전한 것이 아니라,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진 소문’을 듣고, 그 소문을 옥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전했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소문을 들었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는 제 상상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이전에도 그와 같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어요.

요한복음 3장 26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현대인의 성경판을 보시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판 요한복음 3장 26절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찾아가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분, 곧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그분이 세례를 주므로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 몰려가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자”

이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스승인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비교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본다면 자신들의 스승이 제일 잘 되는 것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세례 요한은 일관되게 자신보다 예수님을 높입니다. 제자들은 여기에 대해서 의문이나 불만을 가질 수도 있었지 않았겠습니까.

다음으로 19절과 20절을 봅니다.

누가복음 7장 19절~20절
“19.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세례 요한은 두 제자들을 부른 다음에 예수님께 보내면서 하는 말이, “성경에서 오신다고 예언된 분이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여쭙고 오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앞서 세례 요한은 이 점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지요?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왜 이런 질문을 드리라고 그들을 예수님께 보낸 것일까요.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아닌지 하는 점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품었다고 한다면 어떤 식으로 심부름을 시켰겠어요.

“이봐, 너희들, 예수님한테 가서는 성경 예언된 분이 당신이 맞는지, 아니면 ‘내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여쭙고 와.”

라고 해도 되지 않겠어요?

 
자신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야가 맞다고 가르쳐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지가 사실 가장 핵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줄곧 ‘우리’라는 말을 써요.

‘기다리다’라는 뜻의 헬라어는 단수로 보면 ‘프로즈도 콘’인데, 여기서는 ‘프로즈도 코멘’이라고 일관되게 복수 단어 즉 ‘내가 기다리다’가 아닌 ‘우리가 기다리다’라는 식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쟁점을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여기에 등장하는 ‘우리’는 ‘세례 요한과 제자들’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세례 요한이 보낸 제자들’에 국한되는 것인지가 되겠지요.

세례 요한이 의심을 가졌다고 한다면 ‘우리’에 세례 요한도 포함이 되겠으나, 이미 결론을 내린 바와 같이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품지 않았다고 한다면, 여기서의 ‘우리’는 바로 ‘세례 요한이 보낸 두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21절~22절입니다.

 
누가복음 7장 21절~22절
“21.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왔을 때 마침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든 자들을 고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지금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하시지요.

이 구절을 마치 예수님에 대해서 세례 요한을 납득시키기 위해 전하라는 뜻으로 이해를 하니까 세례 요한이 의심을 했다거나 실족했다고 하는 엉뚱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자신들이 직접 본 것이 아닌,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진 소문만 듣고 요한에게 알렸던 것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이와 갈은 단순한 소문을 듣기만 했을 뿐이니 그들은 이게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 나아가 오신다고 하는 메시야가 그 소문의 주인공인 예수님인지 아닌지 의심을 가질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자 요한은 그들에게 뭐라고 했을까요.

내가 그렇게 너희들에게 말을 해도 못 믿겠거든, 그러면 너네가 직접 가봐.

가서 너희들 눈으로 직접 보고, 그리고 예수님께도 여쭤봐, “우리가 기다려야 할 분이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물어보면 될 거 아냐.

그들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을 듣고 왔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겠지요.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네들, 이제 너희들 눈으로 직접 봤지? 그리고 내 말도 직접 들었지? 이 사실을 요한에게 전해줘.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 이유는 뭐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너의 제자들을 나에게 보낸 목적이 잘 달성되었다. 그들은 직접 보고 그리고 직접 내 말도 잘 들었다는 사실을 세례 요한으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7장 23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 구절을 현대인의 성경판을 참고해서 번역을 하자면 “누구든지 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이는 세례 요한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요한이 보낸 제자들,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가졌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하면 이제 성경적으로 완벽하게 퍼즐이 맞춰지지 않습니까.

 
이를 정리하자면 세례 요한이 두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이유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소문만 듣고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을 올바로 가르치기 위해서 예수님께 보내고는, 직접 보고 직접 듣게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하는 올바른 믿음을 갖게 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와 같은 세례 요한을 보시고 예수님은 얼마나 만족하셨겠습니까. 역시 세례 요한이야. 의심을 가진 제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가르치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다음으로 세례 요한을 높이 평가하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성경 욥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말도 못할 고난 끝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 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욥기 42장 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여기에 대해서 공동번역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공동번역판 욥기 42장 5절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귀로 듣기만 했다는 말씀을 소문으로 들었다는 식의 번역은 일본어 신개역판에도 그렇게 되어 있어요.

 
성경에 정통했던 세례 요한이 이 말씀을 몰랐을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너희들, 소문만 들어봐야 소용 없어. 너희들이 가서 직접 주님을 만나봐.”

그래서 굳이 그들을 예수님께로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누가 그러는데 이건 이렇대. 저건 저렇대, 가 아닙니다. 소문만 많이 들어 봤자 그것은 마치 환난이 왔을 때 후 하고 불면 날라가 버리는 믿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성경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직접 보고 직접 듣는 믿음이야 말로 진정한 축복을 받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주님에 대한 의심을 떨쳐 버리고 믿음과 말씀과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심이 아닌 확신을 가지고 진정한 주님을 깨닫게 되어,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축복을 넘치도록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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