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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면류관 강해 5번째 시간으로서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오늘도 면류관 강해의 핵심구절인 요한계시록 3장 11절을 함께 읽고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아멘.
자, 오늘은 성경본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손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고자 합니다.
삼손이라고 하면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성경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유명한 영화 중에 ‘삼손과 들릴라’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삼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본다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삼손이라면 어떤 사람으로 알고 계십니까. 예, 힘이 센 사람, 머리카락이 길었던 사람, 그리고, 예, 영화 제목에
있는 ‘들릴라’라고 하는 것은 여자 이름인데, 이 삼손은 또한 여자를 좋아했다는 점도 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 그렇다면 여러분께 한 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삼손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요. 삼손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삼손에 대해서 기록된 성경 내용이 어디에 있다고요? 예, 사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손은 사사였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궁금하게 되는 것이 과연 사사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공동성경이나 카톨릭 쪽에서는 ‘사사’라는 말 대신 ‘판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말하자면 재판관이라는 뜻이지요.
성경 기록에 의하면 사사라고 하는 사람의 지위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적이 역할을 감당한 것은 사실이고, 그리고 사사기 4장
5절에 의하면 사사가 직접 재판을 했다고 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옛날에 보면 왕이 재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사가 왕은 아니에요. 왕이 있다면 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가져야
하겠습니다만, 당시 사사에게는 그와 같은 대단한 권력이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주석서에 의하면 사사라고 하는 것은 재판관이라기 보다는 군사지도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제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넘어옵니다.
그 동안 그들을 이끌던 모세는 광야에서 천국으로 가고 그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가 선두에 서서 가나안 땅 공략을 하게 되지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한 그들은 이제 노예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땅에서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이지요.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그렇게 놀라운 복을 받았다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야말로 밤낮으로 찬양과 제사를
드려도 모자랄 판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복을 받게 되면 이상하게도 타락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가나안 땅에 살기 시작할 때부터 그런 조짐이 보였어요.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기 시작하더니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이나 그 가나안 땅에 있던 토속 우상들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시지요. 그러지 말아라. 어서 다시 돌아오라.
하지만 사람들이 듣지를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렇죠. 그 때까지 멀쩡했던 주변 나라 사람들을 격동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되고, 그제서야, 아이구, 하나님 잘못했어요, 하고 회개를 하지요.
그러면 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일으켜서 침략자를 물리치게 하시고는 또다시 평화를 가져오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쓰임을 받은 사람이 대부분 하나님 앞에 사사로서 세움을 받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사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은 예를 들어서 미디안으로부터 구원한 기드온이 있고, 암몬으로부터 구원한 입다도
있지요.
그런데 사사기 중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사사가 누구냐 하면 그것은 바로 삼손입니다.
삼손에 대한 비중은 사시기 13장부터 16장 마지막까지 차지하고 있는데, 그의 경우에는 다른 사사들과 달리 출생 이전부터 사망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보더라도 삼손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알 수 있겠지요.
사사기 13장 2절~5절
“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사사기 13장 13절~14절
“13.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14.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당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라는 사람의 아내에게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뿐만 아니라
더욱 독특한 말씀을 하십니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도 먹지 말며, 아이가 낳으면 아이 또한 그렇게 해야 하고, 뿐만
아니라 그 아이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즉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실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나실인에 대한 규정은 민수기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일정기간 동안 하나님 앞에 특별한 서원을 드리고 하는 것인데, 그
기간 동안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고 머리를 자르지도 않습니다.
이는 말하자면 특별한 기도 기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주님 앞에 거룩하게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일정기간을 정한다는 점이요, 둘째는 자원해서 스스로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삼손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하신 말씀에 의하면 삼손은 나중에 일정기간 동안 나실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는 잠시 나실인으로 있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나실인이 된다는 뜻인 것이지요.
이와 같은 예언을 받고 태어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별히 삭도를 대는 것, 즉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에 대해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의 경우를 본다면 누가복음 1장 15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말하기를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도록 하지만 삭도를 대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1장 11절에 의하면 아이를 갖지 못했던 한나가 기도하기를 만약 아들을 주신다면 평생동안 삭도를 대지 않겠다고
서원을 합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나가 자원해서 한 기도이지 누군가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삼손의 경우에는 포도주나 독주는 물론이고 평생동안 삭도를 대지 말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삼손을 나실인으로 살도록 계획하셨고, 그만큼 그는 특별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과연 마노아의 아내는 아들을 낳습니다.
사사기 13장 24절~25절
“24.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이제 그 아이가 자라자 하나님의 영이 친히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특별히 그에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괴력이 있었습니다.
사사기 14장 6절에 의하면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사자를 찢었으며, 사사기 15장 16절에서는 고작 나귀 턱 뼈 하나가지고 혼자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성경에 제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이토록 능력이 넘치는 사람은 신구약을 통틀어 어디에도 없어요.
그런데 이 일은 단순히 그가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고 근육을 키워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사사기 14장 6절, 14장 19절에는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물리적인 힘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삼손은 사사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몇 년 동안 사사로 있었을까요.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사사기 15장 20절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삼손이 몇 살때부터 몇 살까지 사사로 있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만, 그 기간은 무려 20년이라고 해요.
자, 여러분께서 이와 같은 놀라운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야말로 감사와 찬송이 넘쳐나왔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이었던 삼손, 20년 동안 사사로 있었던 삼손, 그리고 성경에도 다른 사사들보다 많이 기록된
삼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서 감사가 나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조차 없습니다.
이십 년이라고 하는 그에 대한 기록 중에서 그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단 두 번 밖에는 기록되지 않았어요. 그 중 첫번째 기도를
한 번 보실까요.
앞서 잠깐 말씀 드린 것처럼 나귀 턱 뼈 하나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천 명을 물리치고 난 다음의 기도입니다.
사사기 15장 18절~19절
“18.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9.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싸움을 마친 그는 너무나도 목이 말라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적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죽는다면 자신이
그들의 손에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도에요.
이를 쉽게 말하자면, 나 지금 목말라서 죽게 생겼으니까 하나님, 나 좀 살려 달라는 기도 아니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주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가뭄에 콩 나듯이 기록된 사사 삼손의 기도는 감사도
아니고 찬양도 아니고 단지 지금 목 마르니까 물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지하수를 터뜨려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지금 목말라 죽을 지경이었는데 물을 마시니까 얼마나 꿀맛이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입에서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드렸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혼인에 대해서도 삼손은 하나님의 명을 어겼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따라 처음으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서, 그의 아들 이삭을 위해 아내를 얻을 때에도 창세기 24장 3절에
의하면 그 지역에 있는 이방 민족한테서 얻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명기 7장 3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도 직접 이방 민족들과 혼인하지 말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삼손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16장 1절에 의하면 그는 가사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다고 나옵니다.
자, 우선 가사라는 지역이 나옵니다만, 이는 지금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서쪽에 보시면 ‘가자지구’라는 말씀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현재 그곳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 당시에도 블레셋 사람들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곳은
이방인이 사는 지역이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사 삼손은 거기서 전쟁을 벌였느냐 하면, 아니요, 기생과 놀기 위해서 갔었고, 거기서 기생과 하룻밤을 지냈던 것입니다.
사사기 16장 4절에 의하면 그것도 모자라서 그는 들릴라라고 하는 여자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소렉 골짜기에 살았다고 하는데, 이곳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국경지역이라고 합니다.
들릴라라고 하는 여자가 이스라엘 사람인지 아니면 블레셋이나 다른 이방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록에 의하면 블레셋 사람들과 대단히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 16장 5절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생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능히 그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천백 개씩을 네게 주리라 하니”
이 구절 중에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서 현대인의 성경에 보면 ‘블레셋 다섯 지방의 통치자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사사기 3장 3절에 나오는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같은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다섯 도시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들릴라에게 말하기를 삼손의 힘에 대한 비밀을 캐내라고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신들의 부탁을 들어주면 각각 은 1,100을 주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은 1,100이라고 하는 것은 이 또한 신학자들에 의하면 1,100세겔이라고 한다는 것인데, 1세겔은 당시 일반 노동자들의
4일치 품삯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요즘 노동자 일당을 단순계산으로 10만원이라고 한다면, 1세겔은 4일치니까 40만원이 되잖아요?
그럼 1,100세겔은 얼마입니까. 40만원 곱하기 1,100이면, 4억4천만원입니다. 그런데 이를 다섯 도시의 통치자가 각각
1,100세겔씩 내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4억 4천만원 곱하기 다섯이면 얼마냐 하면, 자그마치 22억이 됩니다. 그러니까 당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22억이라는 거액을 내서라도 삼손을 붙잡고 싶어했다는 것이지요.
들릴라는 이제 사랑이 문제가 아닙니다. 돈에 눈이 먼 들릴라는 삼손에게 매달려서 어떻게든 힘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지요. 삼손은
처음 세번까지는 거짓을 알려줍니다.
그 때마다 들릴라가 “블레셋 사람이 왔다” 라고 하자 결박을 풀어버립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못살게 굴며 캐물으니까 결국은 비밀을 털어놓고 말아요.
사사기16장 17절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그래서 들릴라는 어떻게 합니까.
사사기 16장 19절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결국 들릴라는 삼손이 잠든 사이에 그의 머리카락에 칼을 댑니다. 그러자 그의 힘이 없어졌다고 성경은 기록하지요.
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다음 구절입니다.
사사기 16장 20절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머리에 칼을 댄 그는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 기력이 쇠해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삼손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힘이 사라진 그는 꼼짝없이 적들에게 붙잡혀서 21절에 의하면 눈이 뽑히고 끌려가서는 강제로 노역을 하게 됩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신세입니까.
그러던 중 삼손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모셔 놓은 신전에 삼손을 불러다가 희롱을
하자, 삼손은 이제 두 번째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요.
사사기 16장 28절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그러면서 삼손이 그 신전을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을 밀었더니, 그 신전이 무너지면서 거기 있던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30절에 의하면 그 때 죽인 자가 삼손이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많았다고 하지요.
영화로 본다면 굉장히 멋이 있겠지요?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한 번 삼손에 대해서 정리를 해볼까요.
우선, 그는 사사였습니다. 사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운 직분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리고 이는
단순한 재판관이 아니라 군사지도자라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했어야 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사사로서, 그 동안 죄에 물들었던 이스라엘 민족들을 회개 시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는, 군대를
조직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는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치고 평화를 이루어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삼손이 마지막에 죽인 블레셋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죽인 사람들보다 많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방인을 얼마나 무찔렀냐 하면,
사사기 16장 27절에 보면 사람들이 3천명 정도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는 성인남성만이 아니라 남녀 합한 숫자라고 합니다.
그것도 대부분 구경꾼들, 그러니까 군인들이 아니라 민간인들 아니었겠습니까.
좋아요. 남녀모두 합한 숫자로 본다 하더라도, 이 구절에 의하면 마지막에 3천명 정도를 죽였는데, 이는 그가 살아 있을 때 무찌른
이방인들 숫자보다 많았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대단한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이를 모두 합하면 어떻게 됩니까. 삼손이 살아있을 때에 해친 블레셋
사람들은 남녀 모두 합한다 하더라도 도합 6천명도 안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면에 삼손 이전에 있던 사사들 중에서 예컨대 기드온 같은 사사를 보십시오. 그는 삼손과 같은 괴력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는 명을 받았을 때에도, 기드온은 얼마나 소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단 300명의 군대를 조직해서 나아갔더니, 마침내 적군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물리친 적군의 수가 몇 명이었냐 하면, 사사기 8장 10절에 의하면 그가 물리친 적군의 수가 무려 13만
5천명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남녀노소 합한 숫자가 아닙니다. 민간인도 아니에요. 적의 군대, 말하자면 성인 남성 중에서도 무장한 군인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태어나면서부터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본다면 철저하게 불순종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방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긴 정도가 아니라, 사사로서의 직분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나실인으로서 이를
어기게끔 하는 빌미도 제공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삼손은 왜 들릴라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에 대한 비밀을 누설했던 것일까요.
이미 그 이전에 보면 이후에 블레셋 사람이 들이닥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똑같이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네 번째에 그 사실을 알려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명을 어길 수도 있는 위기를 자초했던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명을 좀 어긴다 하더라도 문제 없어. 그 어떤 누가 덤벼온다 하더라도 내 힘으로 거뜬히 물리치고 말
거야. 그와 같은 생각이 있었다고 밖에는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삼손이 만약에 몇 년 동안 열심히 운동한 끝에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서 가질 수 있었던 힘이었다면,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절약한 끝에 돈을 모아서 샀던 능력이었더라면, 삼손이 그 힘에 대한 비밀을 들릴라가 귀찮게 캐묻는다 해서 알려주었겠습니까.
아니요.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음? 이런 비슷한 말씀, 예전에 드린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에서 때 드렸어요. 떡과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넘긴
에서.
그가 왜 장자권을 팔아 넘겼는지 기억하시나요? 배가 고파서요? 그게 아니죠?
창세기 25장 34절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성경은 말씀하세요. 그렇다면 왜 가볍게 여겼습니까. 그렇죠.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었던 축복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장자의 명분, 그야말로 천금을 쌓아도 얻을 수 없는 그 놀라운 축복을 헌신짝 버리듯이 야곱에게 넘겨버리고 말지
않았습니까.
삼손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그와 같은 엄청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역시 천금을 쌓아도
얻을 수 없는 그 놀라운 축복을 귀한 줄도 모르고 가볍게 여기는 바람에, 들릴라 같은 여인에게 넘겨준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말씀하시기를, 마지막에 삼손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고 예전과 같은 괴력으로 우상을 섬기는 신전을 무너뜨린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구원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주장에 대하여 적지 않게 회의적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삼손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기도에서도 감사와 회개가 아닌 단순히 원수를 갚게 해달라는 말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은 삼손을 통해서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우상을 섬기던 신전이 삼손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블레셋 군대도 아닌 민간인, 그것도 남녀 구경꾼들이었어요.
그리고 그 숫자도 3,000명이었다잖아요. 물론 이는 엄청난 숫자지요. 블레셋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대형 참사였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도 그렇잖아요.
비록 전쟁이라고는 하나 상대방의 민간인을 아무리 해쳐도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없어요. 오히려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은 전쟁범죄라고
해서 비난을 받지 않습니까. 성경에도 역시 이 일로 인해서 블레셋이 물러가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셋째로 삼손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율법도 어기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가볍게 여기고, 평생동안 사사로서의 직분도
감당하지 못한 채 결국은 눈알이 뽑히고 수치스러운 노예생활을 하다가 이방인들과 죽음을 맞이한 삼손을 두고, 구원 받은 영광된
삶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마지막에 또다시 큰 힘으로 인해서 우상을 섬기는 신전이 무너졌을까요. 이는 다름이 아니라, 삼손에게 있었던 힘은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삼손이 태어나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그 놀라운 축복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알았더라면, 만약에 삼손이 사사로서의 직분을
깨달아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군대를 이끌어 블레셋과 맞서 싸웠더라면, 그는 억눌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민족의 영웅으로 역사 속에
길이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보면 어떻습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고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을 추방당한 다음에 다시 돌아가지 못했듯이, 에서가 한 번 팔아 넘긴
장자의 명분을 다시 찾아올 수 없었듯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을 원망하여 들어가지 못한
땅에 다시 들어갈 수 없었듯이, 하나님의 명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삼손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시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면류관은 잃어버려도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제 우리는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림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순종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면류관을 끝까지 지키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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